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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강무역전쟁은 왜 일어났나요 美 자국기업 위해 관세 올린 탓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 요즘 세계가 철강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이런 싸움이 시작됐나요.

미국이 먼저 싸움을 건 셈입니다. 지난달 20일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외국의 철강제품에 대해 최고 30%의 특별관세를 매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걸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라고 합니다. 값싼 외국산 철강이 미국에 들어오는 바람에 자국 철강회사들이 죽을 지경이라며 미국 정부가 이런 수입규제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예컨대 1백만원 하는 한국산 철강제품에 30%의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내 판매가격이 30만원이나 더 높아져 잘 팔리지 않게 되죠. 그만큼 미국산 철강제품은 유리해집니다.

자연히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럽연합(EU)·일본 등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은 자기 나라에서 쓰는 철강의 4분의 1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2. 철강 수출국들은 어떻게 반격하고 있습니까.

우선 이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거나 할 계획입니다. 미국의 부당한 수입규제를 막아달라는 것이지요.

미국을 상대로 그만큼의 보복을 다짐하는 곳도 있습니다. EU가 대표적인 경우죠. EU는 미국이 다른 상품의 수입관세를 낮추는 식으로 25억유로(약 2조9천억원)어치를 보상하지 않으면 EU에 들어오는 미국 제품 3백16개에 대해 그만큼의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중국도 1억달러어치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도 카메라 등에 대해 관세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철강관세를 높게 물린 만큼 다른 분야의 관세를 낮춰달라는 것이죠.

EU는 반격을 펴는 한편으로 자국 시장에 대한 보호조치도 같이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외국 철강이 유럽으로 밀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입 철강에 최고 26%의 관세를 물리기로 한 것이죠. 캐나다·중국·말레이시아·브라질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3. WTO 제소라고 했는데,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WTO는 나라간 무역분쟁을 다루는 법원 같은 역할도 합니다. 여기서는 회원국간에 통상마찰이 생겼을 경우 당사국끼리 타협하도록 하고, 그렇게 안될 때는 강제로 조정을 합니다.

이번에 미국을 WTO에 제소한 나라들은 60일 동안 미국과 각각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이 기간 중에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하면 WTO가 나서 패널(일종의 재판부)을 설치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약 6개월간 문제를 검토한 뒤 잘잘못을 판정합니다. 당사국은 이 판정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끝까지 승복하지 않는 나라는 재(再)판정(소송에서 대법원에 내는 상소와 비슷)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최종 판정까지는 2~3년이 걸립니다. WTO 제소는 이처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효과가 별로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4. 왜 철강이 무역전쟁의 대상이 됐나요.

기본적으로 전세계 철강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많이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 생산 시설을 늘려놓은 게 문제가 된 것이죠. 살 사람이 적으니 자연히 철강값은 떨어졌고 철강업체들의 경영은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미국 철강업계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1998년 이후 20개 이상의 회사가 도산했고, 그 중에는 미국내 3,4위 업체도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개봉된 덴절 워싱턴 주연의 '존 큐'라는 영화도 바로 철강근로자들의 어려운 생활을 바탕에 깔고 있죠.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런 어려움이 외국의 값싼 수입품 때문이라며 이번에 수입규제에 나섰다고 말합니다.

5. 하지만 미국 안에서조차 이번 조치가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던데요.

맞습니다. 다른 나라에 무역장벽을 없애라고 주장해온 미국이 보호무역정책으로 돌아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총재로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도 그런 쪽입니다.

그는 "미국은 자유무역으로 다른 나라보다도 큰 혜택을 받았다. 이번 관세부과는 이같은 자유무역체제를 크게 손상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미국 철강업계의 어려움은 제탓인 측면이 짙습니다. 낡은 시설과 비싼 인건비 때문에 제품 제조비용이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두배나 됩니다. 흔히 하는 말로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말입니다.

수입철강을 많이 쓰고 있는 미국내 다른 분야에서도 이번 조치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업계와 가전회사들이 대표적이죠. 이들은 값싼 수입철강을 쓰지 못할 경우 제품가격이 올라가 미국 소비자들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철강업계 근로자(약 20만명)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분야의 더 많은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6.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나요.

한마디로 수입을 막아달라는 철강업계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여기서는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1을 새로 뽑습니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은 상원에서는 49석으로 민주당(50석)보다 한 석 적고, 하원에서는 다수당(2백21석)이긴 하나 민주당(2백12석)과 의석차가 크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의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죠. 더구나 주요 철강업체들이 있는 펜실베이니아·웨스트버지니아·오하이오주 등은 2000년 대선 당시 부시가 표를 적게 얻었던 지역입니다.

결국 중간선거와 다음 대통령선거 때 이곳 사람들의 표를 더 얻기 위해 철강수입규제를 결심했다는 게 미국을 포함한 해외 언론들의 시각입니다.

7. 철강전쟁이 계속 번지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나요.

우리나라같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무역전쟁이 터지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지난해 국산 철강제품 수출액은 67억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11억달러어치가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런 비중으로 볼 때 이번 미국의 수입억제로 올해 국산 철강수출은 20% 정도 줄고 손실액은 2억달러에 이를 걸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EU가 유사한 조치를 곧 시행키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액은 좀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됩니다.

좀더 상세한 정보는 아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보세요.

▶외교통상부:www.mofat.go.kr

▶세계무역기구(WTO):www.wto.org

▶미국 무역대표부(USTR):www.ustr.gov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www.europa.eu.int/comm

▶한국철강협회:www.kosa.or.kr

▶국제철강협회(IISI):www.worldstee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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