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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餓死위기의 쿠차 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3면

"놈 투치에?" (이름이 뭐니?) "미리암"

"찬 살레이?" (몇살 이니?) "판 살레이" (다섯살)

미리암을 따라 집에 가보았다. 깜깜한 방안에 죽은 듯 누워있는 갓난아기. 말라 비틀어진 팔, 다리가 꼬챙이보다 더 가늘다. 나오지 않는 젖을 물려 보는 젊은 엄마, 두살이 넘도록 걷지 못하는 꼬마, 집 앞에 누워서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가재도구를 다 팔았는지 방안에는 옷 몇 가지와 냄비만 덩그렇다.

냄비 안에는 이름 모를 풀이 반쯤 담겨 있었다. 지난 몇 달간 이 여섯 식구의 주식이란다. 다른 먹을 것이 없느냐니까 미리암이 가느다란 나무 뿌리를 가져온다. 내미는 아이의 손바닥이 하얗다. 머리는 누렇게 탈색됐고 배가 유난히 튀어나왔다. 전형적인 영양실조 증세다.

여기가 바로 22년간의 전쟁과 4년째인 극심한 가뭄의 현장이자, 아프간 사람들이 전쟁보다 무서워하는 굶주림의 현장이다.

"일주일 내로 식량이 오지 않으면 이 식구는 고스란히 굶어 죽을 거예요." 동네 촌장은 이 집뿐만 아니라 주민 1천5백여명이 똑같은 실정이라고 한다. 월드비전이 담당하는 서부 아프간 지역 53만명 대부분의 실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긴급구호 사업은 식량구호사업, 영양죽 사업, 그리고 학교 재건사업 등인데, 그 중 월드비전 한국(02-783-5161, 내선 501)은 영양죽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 등 일반 구호식량으론 연명할 수 없이 영양실조 상태가 심한 5세 미만의 어린이와 임산부·수유부에게 영양죽을 공급하는 일이다. 영양 상태가 몹시 나쁜 이들은 감기나 설사도 견뎌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되는데 아프간 아이들의 4분의 1이 다섯살 미만에 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직접 와보니 우리가 나눠주는 영양죽은 그야말로 생명을 구하는 구명줄이었다. "이 아이들 다 어떻게 하면 좋아. 영양죽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봐."

지난주 헤라트에 온 월드비전 친선대사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몹시 안타까워 한다. 나 역시 의아했다. 이 곳은 우리 영양죽 사업지역인 것이다. 알고 보니 다른 양식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용으로 배급된 영양죽을 먹었기 때문에 두달 분량이 사흘 만에 바닥이 났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식량난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거라는 거다. 지난달 파종한 씨가 비가 오지 않아 전혀 싹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올 겨울까지의 수확이 전무할 텐데, 대부분 국제기구들의 구호 식량공급은 오는 6월 종료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제 탈레반이 쫓겨났으니 곧 알라가 비를 내릴 거라고.

그러면 씨를 뿌려 농사지을 수 있다고. 그러니 첫 수확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쥐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한 팀장이 책임지고 이 동네에 먹을 것 좀 갔다 줘. 꼭 그래 줘. 알았지, 알았지?"

정말이지 나도 그러고 싶다.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 살려내고 싶다.

벼랑 끝에 손끝만 걸고 매달려 있는 이들을 잡아끌어 올려주고 싶다. 아, 그런 힘이 내게 있기만 하다면. 세상 사람은 말한다. 아프간 전쟁은 마무리 단계라고. 이제 전후 복구사업에 대해 얘기하자고. 그러나 여기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그것도 피비린내 나는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적군은 잔인한 가뭄과 굶주림. 이를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다. 긴급구호팀은 목숨을 걸고, 이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식량과 사랑이라는 총알이 있어야 계속 싸울 수 있다. 5인 가족의 5일치 식량인 밀가루 한 부대가 1달러, 1천3백원이다.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여기는 헤라트에서 북쪽으로 달려 10시간 가량 떨어진 험준한 산골 동네 쿠차마을. 다섯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땅에서 뭔가를 찾아 겨우 흙만 털고는 게걸스레 입에 넣는다. 나를 보더니 손을 얼른 뒤로 감추며 수줍게 웃는다. 입 주위에는 시퍼런 풀물이 들어 있다. 먹고 있는 것은 시금치처럼 생긴 야생풀, 신장과 위장에 치명적이고 눈까지 멀게 하는 독초란다. 다행히 아이의 큰 눈은 초롱초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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