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 분의 1초 포착 ‘X선 레이저 카메라’ 실용화 시대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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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이종민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 교수가 반사거울을 통해 레이저가 여러 경로로 이동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1조 분의 1~1000조 분의 1초라면 얼마나 짧은지 감이 잡히시는지. 이토록 짧은 순간에 셔터를 여닫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어떨까. 분자 속의 원자 움직임을 보거나 살아 있는 세포 내 물질 이동을 영상으로 찍어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 최근 열린 ‘제12회 X선 레이저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극초단 X선 레이저가 그런 세상을 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X선 레이저 개발이 가속화하고 그 응용 분야도 날로 넓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레이저 탄생과 이 학술대회를 계기로 X선 레이저의 세계에 들어가 본다.

◆특수한 빛=레이저는 태양의 빛과 다르다. 단 한 종류의 빛으로만 이뤄져 있고 빛의 강도가 세며 직진한다. 태양 빛은 겉보기엔 한 가지 같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파장의 빛이 섞여 있다. X선에서부터 눈으로 볼 수 있는 빛까지 여러 가지다. 파장을 파도에 비유하면 물결 하나의 길이를 말한다. 파장이 짧은 빛을 이용할수록 더 작은 물체를 볼 수 있다.

X선 레이저는 기존 레이저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파장이 짧은 빛(30나노미터 이하, 1㎚는 10억 분의 1m)으로 레이저를 만든 것이다. X선 레이저의 가장 큰 장점은 빛 중에서 가장 짧은 파장대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펄스 폭과 파장이 짧을수록 고속 촬영이 가능하고 작은 물체를 관찰할 수 있다. 즉 기존 레이저로는 불가능한 초고속카메라와 현미경 역할을 할 수 있다.


파장이 짧은 빛은 물체를 잘 뚫고 들어간다. 병원에서 찍는 X선 촬영도 이 원리를 이용한다. 그러나 병원의 X선 촬영기는 단지 X선의 빛을 이용할 뿐 레이저가 아니기 때문에 골절이나 암의 유무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레이저 빔 포인터, 그리고 얼굴에 점을 뺄 때 사용하는 레이저는 X선 레이저에 비해 아주 긴 파장의 빛을 사용한다.

X선으로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고 정밀한 빛 제어기술이 필요하다. 경북 포항 방사광 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은 강도가 세지만 거대한 가속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극히 작은 물체를 관찰하는 데는 X선 레이저에 비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전자현미경은 아주 작은 물체를 관찰할 수는 있지만 죽었거나 생물이 아닌 고체를 관찰하는 데 그친다.

X선 현미경으로 분자를 보는 가상도. 살아 있는 세포 내 물질의 이동이나 DNA의 손상 정도도 파악할 수 있다.

◆실용화 근접=이번 학회에 참석한 미국 콜로라도대 로카 박사는 다이오드를 이용한 소형 고출력 레이저를 사용해 책상만큼 작은 X선 레이저 발진장치를 개발했다. 지금까지는 X선 레이저를 발생시키려면 교실 하나를 차지할 만큼의 거대 시설이 필요했다. 고등광기술연구소의 김형택 박사는 은(銀)에서 발생하는 X선 레이저를 이용한 선명한 홀로그램 영상을 소개했다. 학술대회의 위원장인 고등광기술연구소 이종민 교수는 “X선 레이저는 신약이 생체에 작용되는 과정이나 태양전지의 작동 원리를 영상으로 규명할 수 있게 만드는 등 미래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X선 레이저가 실용화하면 여러 분야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신약 개발 때 신약 분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병원균을 죽이는지를 초고속 영상을 찍어 보면서 효능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신약을 투여한 뒤 치료 효과를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X선 레이저의 생체 투과 기능을 이용하면 생체 안까지 입체로 볼 수 있는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기존 홀로그램 입체영상은 겉모습만 나타낼 수 있다. 각종 재료의 속살도 전자현미경보다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자현미경은 전자의 간섭이 있지만 X선으로 현미경을 만들면 그럴 염려가 없다. 이 밖에 X선 레이저는 핵융합로의 플라스마 밀도 분포를 손쉽게 측정할 수 있다. 파장이 짧아 플라스마에서 반사되는 양이 적기 때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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