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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개발 "곤충이 최고 모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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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사람의 큰창자는 빙벽에 버금갈 정도로 미끄럽다. 큰 창자를 펴놓은 뒤 알루미늄 판을 깔고 미끄럼을 탄다면 두 철판 사이에 기름칠을 한 것보다 두배나 잘 미끄러진다.

큰창자 벽과 알루미늄간의 마찰계수는 0.051, 기름칠을 한 두 철판은 0.16. 이렇게 미끄러운 대장 속에서 돌아다닐 내시경 로봇을 개발하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맨손으로 빙벽 등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캡술형 내시경을 개발하고 있는 과학기술부 마이크로사업단(www.microsystem.re.kr)은 촌충과 낙지의 빨판을 모방해 내시경 로봇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때아닌 촌충 확보에 나서고 있다. 창자 안에서 움직이는데 명수인 촌충의 이동 방식을 정확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단은 지난해 몸을 늘렸다 움츠리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자벌레의 운동방식을 이용, 대장 내시경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곤충 뿐 아니라 기생충한테까지도 배우고 있다. 이들은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이동하거나 행동하기 때문이다.

일본 가와사키연구소는 아프리카 개미가 커다란 나뭇잎을 서로 힘을 합해 운반하는 방법을 흉내내 수십대의 초소형 로봇이 협동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는 화공약품의 냄새를 맡는 감지기를 붙여놓으면 그 화공약품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화공약품을 사용하면 그만큼 많은 종류의 행동이 가능하다.

메뚜기와 파리를 모방한 로봇 연구도 한창이다. 진짜 메뚜기나 파리가 아닌지 얼른 구분을 못할 정도로 닮게 만들고 있다.

이를 군사용으로 사용하면, 적진을 정찰하거나 도청·폭탄 장치 등 다양한 활동을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에서 돈을 받아 케이스 웨스턴리저브대가 연구하고 있는 메뚜기 로봇은 달리기와 점프가 가능하다. 고순도 알루미늄합금으로 개발하고 있는 이 로봇은 메뚜기와 흡사하다. 자체 실린더와 공기 압력을 이용해 이동한다. 크기는 5㎝ 정도.

미국 버클리대에서 개발한 파리로봇은 날개를 폈을 경우 2.5㎝인데도 무게는 3분의1g에 불과하다. 초당 수백번의 날갯짓을 하며, 태양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한다.

날개의 경우 고성능 비닐을 이용해 가벼우면서도 초당 수백번의 날갯짓에 견딜 수 있게 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에서는 바닷가재를 본떠 8개의 다리로 바다 밑을 탐색하는 해저용 로봇을 개발했다. 바닷가재가 8개의 다리로 해류를 헤치며 굴곡진 바다밑을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특성을 로봇에 도입했다.

이 외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바다 속에 떠다니는 히드라를 모방한 '히드로봇'을 개발할 계획이다. 빙하를 뚫고 들어가 해저 표면에 떠 그곳을 관찰하게 하려는 것이다.

마이크로사업단 박종오 박사는 "곤충이나 지렁이 등 동물의 행동·형태를 모방하면 특수 목적의 로봇을 개발하기 쉽다"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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