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탈북 소녀 복서 서울에서 챔피언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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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미양이 구슬땀을 흘리며 샌드백을 치고 있다.[안성식 기자]

14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체육관. 경쾌한 댄스음악 속에 앳된 얼굴의 소녀가 샌드백을 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 녹천중학교 2학년인 최현미(14)양. 지난 7월 말 한국 땅을 밟은 탈북소녀다. 동남아를 거쳐 집단입국한 468명 가운데 한 명이다. 부모.오빠와 함께 왔다. 3개월간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서 지낸 현미양은 지난달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나원을 나와 바로 아버지 최철순씨와 권투 도장을 찾았다. 지난 2월 평양을 떠나면서부터 '다시 권투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다.

현미양은 북한의 여자권투 꿈나무. 아버지가 즐겨 보는 외국 프로복싱 비디오 테이프를 어깨 너머로 보며 소학교(초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보였고, 평양 장원고등중학교에 진학한 2001년 9월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뛰어난 자질로 몇 달 뒤 실력이 소문났다. 북한 당국은 현미양을 김철주사범대학 체육단에 배치했다. 현미양은 "대학생 등 30여명의 선수와 붙어 주장 언니만 빼고 모두 내가 제쳤다"고 말했다.

탈북 당시 현미양은 여자복싱 세계챔피언을 겨냥한 북한 여자권투 국가대표 1순위. 아버지 최씨는 "현미에겐 일반 근로자 월급의 7배 수준의 장려금이 매달 나왔다"고 소개했다. "당시 지도원이 현미를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특별선수로 선발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내 프로모션들은 벌써 현미양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훈련은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장정구씨가 맡았다. 장씨는 "기본기가 탄탄한 훌륭한 재목"이라며 "다음달 분당에 장정구 체육관을 개관하면 보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미양은 "한국에 온 후 너무 잘 먹다 보니 48kg이던 체중이 67kg까지 늘어난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최씨는 불안하다. 평양에서는 세 명의 지도원이 현미에 대한 스파링과 기술지도 등을 나눠 맡으며 전문적인 훈련을 했는데, 서울에서는 체계적인 지도가 어렵지 않을까 해서다. 네 식구가 월 120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어 돈을 들이기도 어렵다. 최씨는 "평양 해방산 여관(호텔) 조리사 출신 아내도 아직 직장을 못 구했다"고 말했다.

현미양은 매일 학교수업을 마친 오후 5시부터 4~5시간씩 훈련한다. 그녀는 "북한에서는 '곧추치기''백자루'라 했는데 여기서는 스트레이트.샌드백이라 하는 등 권투용어가 다르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10월 국제여자권투협회(IFBA) 밴텀급 챔피언에 오른 김광옥을 포함해 300여명의 선수가 있어 여성 권투선수층이 두텁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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