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남돕는 일엔 예외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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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왼팔을 제대로 못쓰는 2급 지체장애인 정공순(31·여·서울 서초구 우면동)씨는 봉사단체인 '햇빛촌'의 팀장이다. 햇빛촌 회원 7명은 정씨보다 몸이 더 불편한, 일상의·의·식·주 활동도 꾸준한 교육을 받아야만 가능한 정신지체 2,3급의 장애인들이다.

지난 12일 경기도 성남시 내곡동의 이진실(70) 할머니댁. 오후 1시쯤 이곳에 홀로 사는 할머니의 20평 남짓한 낡은 단독주택에 여자들이 한명씩 찾아들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모인 다섯명의 여자들은 손가방을 내려놓고는 곧바로 음식 준비·빨래·청소 등을 시작했다.

몸이 가냘퍼 보이는 박윤정(31·경기도 용인)씨는 한손으로 마루를 닦는 정씨를 도왔고, 전임주(46·서울 신림동)씨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반찬요리를 했다. 정혜영(30·서울 시흥동)씨는 세탁물을 빨며 마루 닦은 걸레를 새로 빨아 주곤 했다. 안방청소는 장승희(26·서울 봉천동)씨가 맡았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목발로 생활하는 李씨 할머니 댁을 찾아 가사를 돕고 있다. 매번 하는 일이어도 쉽지 않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힘들지만 뿌듯합니다. 장애인이면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도울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1시간이면 마쳤을 일을 배 이상 걸려 일을 끝낸 정씨가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햇빛촌 봉사팀은 지난해 8월 서초구 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던 정씨가 복지관측 제의를 받고 만들었다.

회원들은 모두 서초구 자원봉사 센터에서 운영하는 알뜰살림 교실의 수강생들. 2,3년 전부터 매주 월·수·금요일 알뜰살림 교실에 나와 요리·가사 등 사회생활 교육을 받고 있다.

일반인처럼 생활을 꾸려나가기도 어려운 이들이지만 서로 힘을 모아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나선 것이다.

박경숙씨 외에는 모두 미혼인 봉사자들은 매주 화요일에는 이진실 할머니댁을, 목요일에는 시각장애인인 이상천(40·서울 방배동)씨 집을 찾아 가사를 돕는다. 나머지 회원인 박경숙(48·서울 서초구)·이경하(26·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씨는 정씨와 함께 李씨댁을 찾는다.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정혜영씨는 "봉사활동은 우리들이 어려움을 견디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는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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