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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대선서 승리한 야당 바세스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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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12일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진실정의동맹(JTA)의 트라이안 바세스쿠(53.사진) 당선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뽀빠이로 통한다. 만화영화 주인공 뽀빠이처럼 뱃사람 출신임을 빗댄 애칭이다. 친서방 노선의 중도우파인 바세스쿠는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전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정권하에서 공산당 평당원으로 있었다. 당시 12년간 유조선을 이끄는 선장으로 일했다. 1985년 당기관지에 '모범 선원'으로 소개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진가가 발휘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해운 운송분야의 현장 경험을 평가받아 루마니아 선박운송협회의 대표자가 됐다.

이때 대외 협상에서 빼어난 수완을 과시한다. 타협을 모르는 카리스마적인 태도가 무기였다. 이로써 협상상대를 제압해 적지않은 실리를 챙겼다는 평을 받았다. 이때부터 고속승진을 거듭한다.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뒤 91~2000년 여러 차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에는 수도 부쿠레슈티의 시장에 당선됐고 지난 6월에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됐다. 독일 제2방송(ZDF) 등 외신들은 바세스쿠의 인기비결로 두 가지를 꼽는다. 솔직성과 단호함이다. 바세스쿠는 유세과정에서 동성애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발언을 했다. 루마니아 정교가 87%를 차지할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동성애를 두둔하는 것은 정치인의 금기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정직하게 소신을 밝히는 용기에 갈채를 보냈다. 시장 재직 중 시민들의 골칫거리였던 거리의 주인 없는 개들을 모두 없애버린 단호함도 돋보였다. 서방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밀어붙였다.

이 같은 성향은 선장 경험에서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항해 중 신속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데 익숙해진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바세스쿠는 여당의 부패와 개혁 부진을 질타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특히 대중탕을 자주 드나들며 대중과 친밀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루마니아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원내 2당인 바세스쿠의 JTA당이나 1당인 사회민주당(PSD)이나 모두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각은 총리가 이끌지만 대통령이 총리 지명, 국회 해산권 등을 가지고 있어 양자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 갈등이 불가피하다.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순탄치 않으면 조기에 총선을 치러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2007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유럽연합(EU) 가입도 큰 차질을 빚게 된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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