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남도식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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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고기를 굽는다'.

생각만해도 군침이 돈다. 기름이 떨어져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새가 양복에 배더라도 가끔씩 입맛을 다시게 하는 메뉴다. 그렇지만 구공탄이 거의 사라져버린 서울시내에서 이젠 구경조차 하기 힘든 메뉴가 됐다.

서울 종로 1-2가 사이에는 피맛골이란 허름한 뒷길이 있다. 예전에 서민들이 말을 탄 양반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싫어 일부러 피해다니던 길인데 이곳에 들어서면 연탄불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만날 수 있다.

피맛골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남도식당. 그 근처에 가서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어느새 그 식당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연탄불 위에 놓인 석쇠를 보고 큰 군침 다시 한번 삼키고, 안으로 들어가며 "돼지불고기 하나요"를 우선 외치게 된다.

원래 이 집의 주특기는 4천원짜리 한정식.달걀찜·동태찜·파래무침·게장·꼬막·닭볶음·김·물김치·파김치 등 무려 16가지 반찬이 오른다. 기름기가 흐르는 검은 콩밥에 뜨거운 국도 뒤따른다. 국은 선짓국이 기본. 그러나 한가지 국을 더 끓여 손님에게 선택권을 준다. 북어국·된장국·콩나물국·시금치국·미역국 등. 굳이 선짓국을 기피하지 않는다면 선짓국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맛이 선짓국 전문식당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값에 비하면 너무 푸짐한 상차림이다.두사람 이상은 한정식을 내지만 한사람일 경우엔 3천원짜리 백반을 차린다. 한정식에서 대여섯가지 반찬이 빠지는데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는 주인의 의지다. 허름한 식당인 만큼 깔끔함은 기대하지 말 것. 대신 서민적인 푸근한 정을 느끼며, 밥 한끼 또는 술 한잔 마시기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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