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占치는 정치> '天機' 점괘엔 특정후보 띄우기도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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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30년간 무속인 3천여명을 만나 '무속인의 대부'로도 불리는 경희대 서정범(徐廷範)명예교수는 점(占)에 민감한 정치인의 행태에 대해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역술인 집에 몰린다. 본인이 직접 안 가면 보좌관이나 참모들이 나선다"고 말했다.

徐교수는 이같은 모습에 대해 "정치적 신념과 사명의식이 부족해 대신 운수로 뭘 해보겠다는 발심(發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교수도 "국민이 정치인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신념과 확신에 찬 비전"이라며 "그런데 정치인 스스로 확신을 못가지고 점을 보러 가니 우스운 꼴"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강원택(姜元澤)교수는 "용비어천가식으로 당선 가능성과 정당성을 전근대적이고 미신적 방법에서 찾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2년 대선 무렵 '학봉선사'로 유명했던 하예성교회 김해경(金海京)목사도 "우리나라 정치인은 세가지 종교를 갖고 있다"며 "좋은 이미지를 위한 불교, 표를 얻기 위한 교회, 그리고 자기 운명을 묻기 위한 무당집이다"라고 꼬집었다.

온갖 '예언 적중'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비판적이다. 서정범 교수는 "그게 다 맞으면 어디 예언인가"라고 되물었다. 일부 '족집게'에 대해서도 "대선 전에 전국 샤먼들의 예언을 통계내 봤더니 70% 정도가 적중했더라"며 "전체 경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월간지를 통해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해 유명해진 무속인도 내가 소개해 지면을 통해 주장이 알려졌을 뿐이며 당시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여럿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역술인협회 박광열(朴光烈)회장은 "대권 예언은 천기누설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면서 "게다가 후보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귀신도 아닌데 누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역술인·무속인들이 스스로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김해경 목사는 "특정 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쇼가 많다"고 말했다. 1987년 대선 때 점 관리를 했다는 정치권 인사 B씨는 "어차피 적지 않은 복채를 주는데 나쁘게 나올 리 있겠느냐"며 "흑색선전을 차단할 수 있고, 표도 관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심진송씨는 "전국 무속인이 12만3천명이다. 이들에게 딸린 신도까지 합하면 무시 못할 표가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미교포 예언가이자 기(氣)치료사이면서 하와이주지사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레이 라니(여)는 "몇몇 한국 정치인들이 접촉해 왔는데 어드바이스로 듣는 게 아니라 종교적으로 연관시키더라"며 "겉으론 별거 아닌 척하면서도 속으론 매우 중시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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