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 국제기전 '도요타''바둑아시아' 창설 日 "바둑 자존심 세울터" 韓 "상금 또 챙겨 좋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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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무너진 바둑 강국 일본이 두개의 대형 세계대회를 창설, 다음주에 잇따라 개막한다.

국제대회가 한국의 잔치판으로 돌변하자 국제무대를 멀리 하고 국내대회에 치중해 온 일본 바둑계가 드디어 완고한 껍질을 깨뜨리고 의미있는 변신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 2000년 8월 이후 현재까지 1년7개월여 동안 크고 작은 국제대회를 모두 휩쓸어 무려 13연속 우승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창설된 대회의 이름은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과 '바둑 아시아컵 인 오키나와'.

우승상금 3천만엔(약 3억원)의 도요타·덴소배는 2년에 한번 열리는 개인전이고 바둑아시아컵은 한국·중국·일본·대만 4강이 5명씩 출전하는 총상금 4천만엔(약 4억원)의 단체전.

이로써 세계대회는 개인전 6개, 단체전 2개, TV속기전 1개 등 총 9개로 늘어났다.

근대 바둑이론을 개척했고 1980년대까지 3백여년간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바둑 최강국이었던 일본은 88년 최초의 국제대회인 후지쓰배를 창설하는 등 바둑의 국제화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 직후 한국이 세계무대의 강자로 등장하자 더이상의 국제대회는 만들지 않았고 하나뿐인 후지쓰배마저 그 우승상금이 국내 3대기전(기성전·명인전·본인방전)의 상금을 뛰어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해왔다. 후지쓰배 우승상금을 2천만엔으로 제한해 일본 국내의 4위 기전으로 만든 것이다.

경제규모에서 뒤처지는 한국이 삼성화재배(우승상금 2억원)·LG배(우승상금 2억5천만원)에다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우승상금 1억5천만원)를 주최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일본은 국내 3대기전을 열고 국제화의 추세에 동참해 달라는 한국과 중국의 충고를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단체전인 농심배 등에 최강 멤버 대신 2진을 종종 보냄으로써 국제대회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97년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을 때는 일본기원이 발행하는 바둑신문에 '요다 비원(悲願)달성!'이란 제목을 뽑기도 해 내심으론 세계대회 우승을 열망해왔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과거를 돌아볼 때 일본이 올해 두개의 굵직한 세계대회를 창설하고 이 대회에 3대 타이틀 보유자 등 최강자들을 총 출전시킨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신이 아닐 수 없다.

▶도요타배는 19일 도쿄에서 1회전(32강전)을 치르고 2회전은 9월, 결승전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다. 결승까지 모두 짜릿한 단판승부. 한국선수는 7명. 조훈현9단·이창호9단·유창혁9단·이세돌3단·박영훈3단 등 5명의 타이틀 보유자에다 김수장9단·박지은3단(여자)이 추천멤버로 뽑혔다.

▶바둑아시아컵은 각국 5명의 선수가 동시에 대국해 이긴 팀은 결승전, 패한 팀은 3,4위전을 치르는 방식. 오는 22, 23일 오키나와에서 열리며 한국선수는 조훈현9단·이창호9단·유창혁9단·이세돌3단·박영훈3단이다.

올해 17세의 박영훈3단은 최근 국내 타이틀(천원)을 획득하는 바람에 규정에 따라 올해 모든 국제대회에 우선적으로 출전하는 행운을 잡았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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