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범과 사투 벌이는 父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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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돈 세이 워드'(원제 Don't Say a Word)는 할리우드의 앞과 뒤를 보여준다.

객석을 긴장 속에 몰아넣는 스릴러의 매력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할리우드의 저력을 드러냈다는 게 '앞'이라면, 가정을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는 '영웅적' 아버지를 재연했다는 게 '뒤'에 해당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구현한 듯 하면서도 종국엔 어디서 들었던 얘기를 되풀이한 듯한 느낌을 준다.

대중성이라는 면에서 '돈 세이 워드'는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이뤄냈다. 무게추의 중심이 쏠린 '앞'쪽의 얼개가 탄탄하다. 두 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곁눈질, 혹은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장르 영화로서의 스릴러를 요리하는 기본기가 충실하는 뜻이다.

'돈 세이 워드'는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다양한 서브 플롯을 용해시킨다. 여러 인물과 상황을 빠른 속도로 번갈아가며 비추고, 또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며 영화 속 현실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는 멜 깁슨 주연의 '랜섬'처럼 유괴된 자녀를 되찾으려는 한 아버지의 무용담이다. 추수 감사절에 정신과 의사 네이선(마이클 더글러스)의 어린 딸을 납치한 패트릭(숀 빈)일당은 네이선에게 10년간 정신병동에 수감된 소녀 엘리자베스(브리타니 머피)에게서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여섯 자리 숫자'를 알아내라는 특명을 내린다.

영화는 이후 네이선과 범죄집단의 대치, 네이선과 엘리자베스의 신경전, 10년 전에 발생했던 다이아몬드 강탈 사건의 내막, 뉴욕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여형사, 패트릭 일당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네이선의 아내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곁가지를 쳐나간다. 미스터리와 액션 등 스릴러의 '필수 아미노산'을 적절히 가미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범죄영화 '덴버', 스릴러물 '키스 더 걸' 등을 연출했던 게리 플레더 감독은 이번에 마이클 더글러스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블록버스터급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두뇌 회전이 빠르면서도 가시고기 같은 부성애를 한껏 보여주는 마이클 더글러스의 노련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덕분에 '돈 세이 워드'는 9·11 테러 이후 잠시 공황에 빠졌던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예상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 결말, 후반부에서 부각되는 액션극 등은 이 영화를 '양들의 침묵'과 같은 스릴러 명작의 반열에 올려 놓기엔 힘이 달려 보인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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