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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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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나무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소나무는 우리의 친근한 벗이었다.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초가집이건 기와집이건 대들보나 기둥은 소나무를 썼고 대청마루엔 송판을 깔았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어머니는 서낭당 소나무 아래서 기도를 드렸고, 길 가던 나그네는 고갯마루의 소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뿐인가. 보릿고개 때 허기진 배를 채워준 것이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였다. '××× 찢어지게 가난하다'란 속말은 이 송기떡을 먹고 변비로 고생하던 시절 나온 한 맺힌 표현이다. 그리고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누워 세상을 떴다. 이렇게 보면 '남산 위에 저 소나무…'하는 애국가 2절의 가사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예부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한겨울 추위가 닥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했는데, 추사(秋史)의 세한도는 이런 소나무의 격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이(李珥)는 송죽매 세한삼우(歲寒三友) 가운데서도 소나무를 으뜸으로 쳤고, 성삼문(成三問)은 죽어가면서 "낙락장송이 돼 독야청청하리라"고 했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오 탄넨바움'이란 독일 동요는 우리 소나무처럼 흔한 전나무의 정절을 찬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를 '소나무야'로 제대로(?) 번역했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松下問童子) 스승은 약초캐러 갔다고 한다(言師採藥去). 지금 이 산속에 계시지만(只在此山中)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나이다(雲深不知處)'.-이렇게 읊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시정(詩情)은 여러 묵객들이 즐겨 그린 소재였다. 이 '송하문동자도'뿐 아니라 동양화엔 으레 소나무가 등장한다. 그러나 막상 화가들에게 물으면 소나무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너무 자세히 그리면 품위가 떨어지고 적당히 그리면 기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늘 우리와 함께 해 온 소나무가 1백년 뒤에는 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고생대 말에 등장,몇억년을 버텨온 '살아 있는 화석' 소나무가 불과 1백년 뒤에 사라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실이라기보다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하자는 메시지가 더 강하다는 느낌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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