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스님은 이날 측근에게 전한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의 서두에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난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는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최근 4대 강 사업 반대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문수 스님을 언급하며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이어 “저는 죽음이 두렵다. 제 자신의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다”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이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화계사 신도들에게 남긴 글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중 노릇을 하겠습니까.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며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도법 스님, 연관 스님 등과 함께 사회현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를 내세우며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수경 스님의 갑작스러운 사의로 인해 불교환경연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집행부의 중책을 맡고 있는 한 스님이 최근 여자 문제로 분란을 겪은 터라 더했다. 당시 수경 스님은 호통을 치며 당사자에게 사직을 권고했다고 한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도 현재 이 문제를 비공개 조사 중이다. 불교환경연대 관계자는 “수경 스님의 사직과 이 건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