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반대 앞장섰던 수경 스님 글 남기고 행방 감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불교계 환경운동의 대표주자였던 수경(61·화계사 주지·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사진) 스님이 14일 “조계종 승적을 반납한다”는 글을 남기고 행방을 감췄다.

수경 스님은 이날 측근에게 전한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의 서두에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난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는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최근 4대 강 사업 반대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문수 스님을 언급하며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이어 “저는 죽음이 두렵다. 제 자신의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다”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이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화계사 신도들에게 남긴 글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중 노릇을 하겠습니까.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며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도법 스님, 연관 스님 등과 함께 사회현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를 내세우며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수경 스님의 갑작스러운 사의로 인해 불교환경연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집행부의 중책을 맡고 있는 한 스님이 최근 여자 문제로 분란을 겪은 터라 더했다. 당시 수경 스님은 호통을 치며 당사자에게 사직을 권고했다고 한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도 현재 이 문제를 비공개 조사 중이다. 불교환경연대 관계자는 “수경 스님의 사직과 이 건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