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간디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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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종교는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비타협적이다. 신앙이라는 강고(强固)한 신념의 차이가 신자와 비(非)신자를 구분하고 서로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인도 구자라트주(州)에서 발생한 종교폭동은 5백년간 계속돼 온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갈등이 다시 한번 표출된 작은 사건일 뿐이다.

폭동은 유혈 참극이었다. 1주일만에 7백명 이상 사망했다. 사태는 진정됐지만 해결은 멀다. 다수파인 힌두교도들은 소수파인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학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사건은 힌두교도들이 탑승한 열차에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방화, 58명이 사망하면서 비롯됐다.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를 모욕하는 노래를 부르고, 이슬람교도 여성을 희롱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과격파 힌두교 단체가 선동해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살상·약탈·방화를 자행했다.

인도는 전체 인구(10억명)의 8할인 힌두교도와 13%의 이슬람교도가 양분하고 있다. 원래 힌두교의 나라였지만 16세기 무굴제국이 이슬람교를 들여왔고, 그후 영국이 식민지 분할통치에 이를 이용함으로써 양자 사이엔 갈등이 계속돼 왔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으로 나눠졌지만 이슬람교도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도에 남았다. 인도는 정교(政敎)분리를 기본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두 종교는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힌두민족주의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갈등이 나타났다.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은 84년 하원 의석 2석으로 출발, 98년 1백79석으로 제1당이 됐다. 96년 집권에 성공한 BJP는 99년 재집권했으며, 현재 22개 정당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다. BJP는 카스트 상위 계층·정부 관료·도시 상공업자 등이 지지기반이다. 또 힌두 사회 재생과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민족봉사단(RSS)·세계힌두교협회(VHP)와 동맹관계다.

힌두민족주의는 92년 12월 힌두교 성지(聖地) 아요디야에서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16세기 무굴제국 1대 황제였던 바부르가 세운 모스크로 원래 이 자리엔 힌두교의 라마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십만명 힌두교도들이 몰려가 바브리 모스크를 완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해 2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VHP는 아요디야를 이슬람교로부터 '해방'시켜 바브리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세울 계획이다.

VHP는 오는 15일 아요디야 힌두교 사원 기공식을 갖는다. 인도 최고법원은 사원 건립이 불법이라고 판결, 공사 중단을 명령했지만 VHP는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할 방침이다. 이날 1백만명을 동원한 성대한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 앞으로 힌두교 최대 성지 바라나시, 크리슈나신(神) 탄생지 마투라 등 역사적 배경이 비슷한 다른 지역에서도 '아요디야 폭탄'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독립 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열할 때 "차라리 내 몸을 두 토막 내라"면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인도는 간디의 호소를 외면했으며, 힌두교 광신도의 흉탄에 맞아 간디는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지만 인도는 그때와 같은 종교적 편협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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