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논리를 경계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사회=자본주의가 인간을 행복하게만 해줬을까.

이정전=신자유주의자들은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시장이 행복을 준다는 가설에 회의적이다. 극단의 두 진영을 적나라하게 견줘보고 싶었다.

사회=두 진영을 단순 절충을 했단 말인가.

이정전=신자유주의 입장은 자본을 바탕으로 유포돼 왔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이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왜곡된 부분이 많다. 내가 보기에 특히 마르크스 사상이 그렇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이며, 이를 비판하는 진보진영 주장의 정확한 논리가 무엇인지 알면 개선점이 보이지 않겠는가. 마르크스의 주장은 이제 빈부 격차, 갈등 문제로 왜소해져 버렸다. 그러나 마르크스 철학은 사람이 생산의 요소로 자원화하는 현상, 인격이 사라지는 물화(物化)현상을 우려한 것으로 더 광범위했다.

정호근=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라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된 현실이다.

이정전=시장 영향력도 그렇게 봐야 한다. 이제 시장 매커니즘은 개인의 사고와 태도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시장 매커니즘이 우리의 도덕심에 미치는 영향을 파고들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합리적 행위와 자유의 대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모 자동차 회사 자동차의 치명적 결함 문제를 따져보자. 이 자동차를 전부 리콜해 결함을 고치는 것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상을 해주는 것이 훨씬 싸다고 해서 오랫동안 결함을 쉬쉬해버리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행위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합리성이 곧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보·혁 양쪽의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교수는 진보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시장 경제가 경제 외적인 것에 미치는 악영향이 그렇게 크다는 건가.

이정전=하버마스는 사회를 생활 세계와 체계로 나누었다. 생활 세계란 언어를 매개로 상징적 재생산이 이뤄지는 구체적 삶의 영역을 말한다. 체계는 화폐와 권력을 매체로 하는 경제영역과 관료행정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관료체계에 시장논리가 스며들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보라. 계약제를 채택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등 시장원리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삶의 영역(생활 세계)에까지 들어오면 인간은 얼마나 피폐해질까.

정호근=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현재의 사회규모에서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면, 공익을 위한 경우 제한적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거나 복지제도·시민사회 활성화 등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장에 전폭적으로 지배당하지 않고 삶의 영역을 지킬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이정전=맞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그만큼 시장의 해악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시장 논리가 전 분야에 적용되는 것을 비판해 보자는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그 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호근=게다가 우리의 시장경제는 정경유착 등으로 그나마 매우 왜곡돼 있었다.

사회=시장 안에서 룰을 지키는 것만으로 도덕성 확보가 될까.

정호근=시장에서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게 모두 기만과 사기는 아니다. 정비가 된 시장이라면 최소한의 도덕은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정전=시장에서의 합리적 행위가 부도덕하기 쉬운 상황이 있다. 특히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불평등하게 유포돼 있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정보가 완전하게 유포된다면 시장에서도 사람들은 상당 정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허나 현실세계는 아니다.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때 이익을 얻는 수가 매우 많다. 보수주의자들은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징벌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회적 희생을 치르고 난 다음에 사기꾼이 잡힌다면 그때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사회=두 분의 입장은 어찌보면 같다. 시스템을 보완하고 시장의 팽창을 막자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후 대안은 무엇일까.

이정전=일단은 시장이 이데올로기화 됐다는 사실을 유포하고 경계해야 한다. 사실 방향을 제시하는 건 경제학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업에 철학자들의 동참이 필요한데 아쉽다.

정호근=철학이 세분화·전문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러나 통합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인 만큼, 이교수의 문제제기는 학제간 통합 연구가 절실함을 상기시키는 좋은 자극이다.

사회·정리=홍수현 기자

"합리성으로 무장한 시장 구성원들에게 이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제학자인 이정전(59)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이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한길사)를 통해 던지는 질문이다. '합리성'이란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달성하는 '자본주의적 이기심'의 다른 이름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해소된 후 이기심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최고의 가치로 찬양받는다. 하지만 서구 사회는 태생적으로 부도덕성을 내포한 시장경제에 줄곧 비판을 가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이교수의 작업도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제3의 길'을 우리도 모색해 보자는 논의의 첫 단추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이교수는 보·혁 양진영의 복잡한 논리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데 치중한다. 양측의 입장을 알아야 조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정의시민연대 대표 등 비정부기구(NGO)활동가로서 이교수가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진보와 보수 색채가 중첩돼 있다. 정호근(44)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이교수의 이번 저술과정에서 대화 상대였던 지기(知己)이기도 하다. 학제간 연구의 전초전격으로 시장의 비대화에 대해 수시로 토론해 왔다고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