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 칼럼] 동의보감 속 발기부전, 허준 선생의 해결책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정택 한의사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보장 된다면, 생물로서의 인간에게 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손을 만들어 유전자를 남기는 일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발기와 건강한 사정이 이루어져야만 이러한 생식 행위가 가능하다. 시험관 아기 등의 시술이 없던 시절에는 발기가 안 되면 사정 자체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과거의 발기부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고민거리 였을 것이다. 가부장적 구조에서 대를 잇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 였기에 발기의 회복 문제는 한의학에서도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그렇다면 발기부전 회복을 위해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께서는 어떠한 판단과 해결책을 제시하였을까?

한의학에서 일반적인 발기부전은 음위(陰痿)라고 지칭한다. 음경이 무력하고 위축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생활을 지나치게 하거나 다른 질병으로 인해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의 경근(經筋)이 상했을 때 발생한다. 즉 음경 해면체를 둘러싸고 있는 구해면체근과 탄력성 백막이 지나치게 이완되거나 손상을 당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져 발기가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 탓인지 원인으로는 주로 과도한 성관계나 자위로 인한 쇠약성 발기부전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의학의 발기치료를 단순히 정기를 보강하는 보양요법 정도로 이해하는 분들이 참 많다. 그러나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면 허준 선생은 젊은 연령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생식기관의 염증성, 울혈성 긴장에 따른 발기부전을 상세히 구분하여 그 치료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언급이 ‘한산증’ ‘음냉증’ ‘칠상증’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음낭이 당기고 차고 딱딱해지는 한산(寒疝)증

한산(寒疝)의 증상은 음낭이 차고 딱딱해지며 당기는 통증과 함께 발기가 되지 않는 것인데, 회음부에 분포한 근육의 병적인 경련이 일어날 때 발생한다. 심한 정계정맥류에서 고환의 정맥이 부어오르고 임파선이 커지며 주변조직을 압박하는 경우, 혹은 만성골반통증증후군에서 염증성 변화 없이 비특이적인 근육의 경련과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회음부의 근육이 과도한 수축을 일으켜 발기를 저해하며 상당한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경과 음낭이 차고 축축해지는 음냉(陰冷)증

음경과 음낭이 차가워지는 음냉(陰冷)에서도 발기부전이 생길 수 있다. 많은 경우 생식기의 양기(陽氣)가 고갈되어 발생한다고 보았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음냉에 사용하는 처방 중 하나인 청혼탕(淸魂湯)은 전형적인 음냉의 증상인 음경과 음낭이 차고 발기가 안 되는 것과 더불어 음낭이 축축하고 가려운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에 투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처방의 대표약은 시호와 황백이다. 양기를 북돋는 작용과는 정반대인, 오히려 열을 내리고 음기(陰氣)에게 길을 열어주는 성질을 가진 약재이다. 대표약을 돕는 보조 약재들로 사용된 승마, 택사, 용담초, 적복령 모두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처방은 적극적으로 열을 내리고 습기를 말리는 작용을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다.

열을 내리고 습기를 말려야 하는 상황인데도 음경과 음낭이 차가워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는 전립선의 염증이 만성화 되었을 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전립선은 그 주변의 치골, 방광, 직장, 음경해면체와 고환 등의 중요 조직과 밀착된 상태로 위치한다. 전립선에 염증성 변화가 일어나면 초기에는 열 반응이 나타나지만, 만성화될 경우 긴장과 압박이 지속되어 울혈이 생기고 주변 조직에 대한 혈액공급이 부족해지게 된다. 따라서 음경과 음낭이 차가워지고, 염증이 자리잡은 전립선과의 온도 차이를 조절하지 못해 음낭이 축축해지는 낭습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음경과 음낭이 찬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일 뿐이고, 원인인 전립선의 울혈성 변화를 풀어주고 주변조직을 진정시켜야 문제가 해결된다. 반대로 섣불리 양기를 더해주는 약을 투여했다가는 울혈과 긴장만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소변증상과 정액의 변화를 동반하는 칠상(七傷)증

허로(虛勞)문의 칠상증(七傷證)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남성의 허로(허약상태)가 극에 달하면 칠상증이 생기는데, 이 칠상증의 증상은 정액 양이 적고 묽으며 차가운 것과 더불어 음낭이 축축하고 가려우며 소변 횟수가 잦고 시원치 않으며 소변 색깔이 붉고 소변 볼 때 작열감이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변에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만성전립선염의 증상에 해당되며, 전립선 염증이 오래 지속되면 정액의 성상이 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칠상증이 오래 묵은 전립선염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음위(陰痿)를 치료하는 대표적인 보양처방이라 할 수 있는 환소단(還少丹)에도 “울화(鬱火)가 심하여 음위증이 생겼을 때에는 환소단을 쓴다고 해도 음경이 잘 일어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모나 황백 같은 약을 써서 화(火)를 내리고 신(腎)을 든든하게 해야 한다”라는 주의사항이 명시되어있다. 환소단은 주로 보하는 약으로 구성되어있는 처방이다. 한편 지모와 황백은 생식기의 열을 내리고 염증을 주로 치료하는 대표적인 약재로서, 황백은 앞서 언급한 청혼탕의 대표약이기도 하다. 즉 염증성, 울혈성 변화가 있을 경우 보(補)하기만 해서는 효과가 없으며 원인부터 해결해야 된다는 점이 뚜렷하게 서술되어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발기부전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다. 단순한 ‘정력의 강화’라는 차원을 넘어서 엄연한 병적 변화로서 치료와 해결의 대상으로 접근한다. 또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법도 환자마다 달리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거 대의학자의 깊은 성찰과 세세한 치료방안으로 현대의 많은 남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후학으로써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의사 이정택

이전 칼럼 보기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