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인가 과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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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산업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보다 높게 전망하면서 산업현장에 완연한 봄 기운이 돌고 있다. 자산시장도 뒤질세라 화답하면서 종합주가지수는 미 테러사태 이후 6개월 만에 거의 두 배로 상승했고 대망의 1,000고지 탈환을 노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서울 전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불이 붙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과열을 걱정하고 있다. 수출은 올해 들어서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설비투자도 이제 회복세를 보이는 정도인데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회복의 진원지인 미국의 경우 주가는 테러사태 이전과 비슷하고 부동산 시장도 달아오르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시중 여유 자금이 모두 자산시장으로 몰리면서 현재의 활황이 거품처럼 꺼질까봐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 경기상황에 대해 진념 부총리는 아직 본격적인 경기회복국면으로 보기 어려우며 거시경제정책의 탄력적 운용으로 올해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인 5%의 안정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경기가 본격적 회복국면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왜 일부에서 과열을 걱정하고 있는가. 또 올해 경제성장률이 5%를 넘는다고 해도 지난 5년간 평균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데 왜 과열을 걱정하는가.

경기 과열 여부를 진단하려면 크게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자산시장이 과열현상을 보이고 있느냐다. 곧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한다고 하자. 우리의 기초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당연한 수준으로 보아 기뻐해야 할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거품이 돼 사라질지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둘째, 현재의 경기회복 추세가 잠재성장률을 능가해 물가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것인지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으나 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목표치 상한선 4%를 넘어섰다. 따라서 현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경기회복이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경기 과열에 대한 진단이 쉽지 않으며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나 향후 정책운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한국은행의 정책목표는 자산시장의 안정에 있지 않고 물가안정에 있으므로 자산시장 과열로 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지 않는 한 통화정책의 칼을 자산시장에 들이대서는 안된다.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함으로써 경제불안이 가중되는 경우에도 처음부터 금리를 인상해 불안의 씨앗을 없애려 하지 말고 금리 인상 이외의 시장친화적 정책수단을 동원해 자산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은행이 뒷짐지고 있기에는 아직도 경제구조가 매우 불안하다. 주가가 떨어지면 구조조정을 해 주가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다른 이유로 주가가 상승했는데 구조조정이 잘된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특히 미완의 기업 구조조정으로 금융기관들은 기업 대출을 꺼리는 대신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에 치중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풀려나간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이 다시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쓰이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주가는 미국은 물론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크게 상승했다. 만약 자산시장이 단기과열로 끝나고 만다면 가계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나 경기회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단기간에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면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향후 인플레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보다 철저하게 인플레 목표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올해는 경기회복과 선거 등의 요인으로 인플레 압력에 조기 대처하지 않으면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목표치를 상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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