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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네가 떠나고 없는 집은 몹시 휑하다. 대학 기숙사로 향하는 너를 따라 짐을 싸고 풀면서도 헤어짐의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나는 당부의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지. 야단을 맞으면서도 책상 가득 어질러진 잡동사니를 정리하기는커녕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라 하던 네 속뜻을 이제야 비로소 헤아리며 네게 편지를 쓴다.

코흘리개 신세를 겨우 면한 초등학생들도 부모를 떠나 중국으로 유학 가는 요즘, 대학생이 된 아들을 떠나 보내는 일쯤 대수랴 싶었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첼시도 대학생이 되면서 백악관을 떠났고, 우리 나라 대학생들의 소망 또한 학교 근처의 오피스텔을 구해 독립하는 것일 정도로 부모와 자녀 간의 '정신적인 이유기'가 대학입학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이해였을 뿐, 내 마음에서 너는 여전히 탯줄로 이어져 숨쉬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러나 더 이상 모체로부터 양분을 공급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에게 있어 탯줄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할 뿐이다. 이제 우리를 종속적 관계로 이어 주었던 정신적 탯줄을 끊고 온전한 객체로 너를 떠나 보낸다.

대학 생활은 지금까지 너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학교수업에서 학원 교습에 이르기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왔던 네게 처음으로, 게다가 거의 무한정하게 주어진 자유는 때론 부담스럽기조차 할 것이다. 너는 매번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네가 내린 결정은 영원히 너의 몫으로 남는다. 자유의 뒷모습은 책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네가 누리는 자유가 방종과 태만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이따금 너는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두려워 하지 말아라. "각자가 누리는 삶의 시간이란 그 물리적 길이와 상관없이 적어도 한 가지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긴 것"이라고 대학시절 은사는 말하셨다. 아들아, 우리에게 늘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꿈과 그것을 이루려는 열정이 아니겠니. 꿈이 빚어낸 희망과 열정이 잉태한 노력을 네 것으로만 할 수 있다면 성공은 언제나 네 가까이 머물러 있다고 말하고 싶구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50여년 전 한 대학에서 이렇게 말했다는구나. "대학교육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방식을 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더욱이 인간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어쩌면 '죽음'을 상실해버릴지도 모르는 미래를 살아갈 네게 삶은 더욱 복잡하고 고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아들아,학문적 지식을 쌓는 데 만족하지 말고 그 행간에 깃들인 삶의 지혜를 부지런히 찾아보도록 하렴.

대학에서 너는 또한 많은 이들을 만날 것이다. 기껏해야 여러 개의 동(洞)을 아우르는 정도의 생활공간이 전부였던 네게 해석조차 불가능한 우리말을 듣는 일은 작은 충격일 수 있다.

인터넷으로 낮과 밤이 다른 지구 저편의 사람들과도 자유로 교신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호흡하는 것만큼 강렬한 만남은 없다. 알게 모르게 쌓인 편견일랑 말끔히 털어내고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됐으면 좋겠구나. 지역 편견의 늪 속에 함몰돼 정체돼 버린 기성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너를 통해 희망처럼 간직하고 싶어서지.

네게도 머잖아 사랑이 찾아 올 것이다. 사랑이란 자신을 결점이 많은 불충분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보람을 얻게 한단다. 그러나 쉬 변하기도 하고 도저히 파괴할 수 없기도 하지. 그러므로 때로 너는 기쁨과 아픔 속에 괴로움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라.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실연도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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