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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이끌고 범인 찾은 경찰 "부모 동의 받았다" 해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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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45) 사건과 관련해 11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아동의 2차 피해를 막을 것을 촉구했다. 의협과 변협은 성명서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과 가족을 제대로 보호하고 치료해 2차 피해를 막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이라며 “수사ㆍ재판 단계에서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협회는 "성범죄 피해 아동의 고통을 잘 아는 전문가인 의사와 변호사로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조두순, 김길태 사건에 이어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아동 성범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에 통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학교 안전망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고 ^임기응변식 대책을 내놓는 대신 이미 마련된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며 ^성범죄 가해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날 성명은 본지 보도(6월 11일자 1면)에서 비롯됐다. 경찰이 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심한 상처를 입은 A양을 치료도 하지 않고 범행 현장부터 데려갔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독자와 네티즌들은 “아이의 안전보다 범인 검거가 우선이란 말인가”라며 다시 한 번 분노를 터뜨렸다. 초등학생 딸이 있다는 한 독자는 메일을 보내와 “일단 아이를 병원에 옮긴 뒤 현장 지도나 동영상을 이용해 진술을 받을 수도 있지 않았냐”며 “아이를 두 번 다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외형상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보였고 생생한 기억이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경찰은 A양에게 “아저씨(성폭행범) 집이 어딘지 알겠냐”고 물었고, A양이 “기억이 난다. 여기서 가깝다”고 하자 여경이 동행해 범행 현장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경찰은 또 "A양 부모의 동의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사가 매뉴얼에 따라 이뤄졌냐는 질문에는 "매뉴얼의 세부 사항까지는 잘 모르지만 피해 아동이 싫어하는 질문은 강압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지켰다"고 대답했다.

당시 A양의 옷에는 혈흔이 있었고, 부모는 당황해서 울고 있던 상황이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그런 참혹한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는 물론 부모도 냉철하게 판단하기 힘들다”며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부모에게 동의를 얻고서 아픈 아이를 끌고 범행 현장에 다시 갔다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럴 경우 아이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2차 피해를 입게 된다”고 덧붙였다. 변협 김평우 회장은 “아동 성범죄 수사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 여죄 수사 확대 = 김수철이 경찰 조사에서 “10대 여자친구를 만나다 헤어졌다”는 진술을 함에 따라 경찰은 김의 여죄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은 10대로 보이는 여자 청소년을 데리고 자주 동네 식당에 들렀다고 한다. 김은 식당에서 이 청소년을 “PC방에서 만난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했으며, 며칠 뒤에는 혼자 나타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서 휴가를 가려고 했는데 헤어지자고 하더라”는 말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 동네 주민들은 "김이 속옷만 입은 채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불안감을 전하기도 했다. 경찰은 김이 청소년을 상대로 성매수 등의 범행을 저질렀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김의 인터넷 채팅 내역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김의 DNA 샘플을 보내 최근 일어난 성폭력 사건 피의자들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했으나 아직 일치하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범행에 대해 김이 자백한 것도 없어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곧 범행 현장 검증도 실시할 계획이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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