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 취재] '휴대전화 커닝' 밝힌 사이버범죄 수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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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커닝'이 전국에서 벌어졌다는 충격적 사실을 캐낸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원들. 왼쪽부터 최형욱 경위, 김재규 대장, 최창수 경사, 정현희 경사.[변선구 기자]

"도대체 이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경찰청 2층 복도 끝 사무실. 유리문이 굳게 닫힌 사이버범죄수사대 앞에서 언론사 취재기자 10여명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수능시험 부정 행위 수사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사무실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경찰서 하면 연상되는 누군가를 다그치는 고함 소리도, 조사실을 옮겨다니는 피의자나 수사관들의 발걸음 소리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수사대는 전국에서 휴대전화 커닝이 의심되는 550여개의 문자메시지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하루 뒤 김재규(42.경정)사이버수사대장은 "서울 등 전국에서 21개조 82명이 휴대전화 커닝을 저질렀다"는 '메가톤급' 발표를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된 휴대전화 커닝 수사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그 조용한 사무실에서 3억건의 문자메시지 가운데 24만8000건을 조회해 550여건의 의심나는 메시지를 추려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 사상 초유의 휴대전화 커닝 수사=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10일 취재진을 만난 수사 전담반(사이버금융팀) 5명은 잠이 부족해 모두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수사에 몰입하다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모른다고 했다.

'온라인' 세계의 사건을 추적하는 약 3주 동안'오프라인'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했다. 몸무게가 4.5㎏ 빠졌다는 김 대장도 수사하는 동안 퇴근을 반납했다. 답안으로 의심되는 숫자메시지를 확보하고, 그 휴대전화 번호의 송수신 시간과 답안을 맞추고 해당 수험생을 찾아내는 '미로찾기'같은 수사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잠시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컴도사'수사관들=휴대전화 커닝 메시지 550여건을 최초로 적발하는 데는 사이버수사대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이 한몫했다. 숫자메시지와 그 메시지가 보내진 수능시험 과목의 정답을 비교해 정답이 많은 메시지를 골라내는 프로그램이다.

최형욱 사이버금융팀장은 '간단한 프로그램'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컴퓨터 도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찰대 출신(2기)인 김 대장은 정보처리 관련 자격증 2개가 있다. 수사팀은 형사 출신 수사관과 컴퓨터 전문가 1명씩 두명이 짝을 이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조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수사관 29명 중 90% 이상이 대졸일 정도로 학력이 높다. 이 중 5명은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등을 가진 사이버 수사요원 특채 출신이다. 22명이 자바 프로그래밍이나 네트워크 관리 자격증 등을 갖고 있다. 금융기관 보안 담당 출신, 시스템 통합업체 출신 등 전력도 다양하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전산 특채 요원 임판준(36)경사는 수사기법을 개발해 정보통신부로부터 저작권을 인정받기도 했다. 여성 경찰관 3명도 맹활약하고 있다.

사이버 수사대가 사용하는 장비 역시 첨단을 달린다. 지워진 데이터를 복구하는 소프트웨어의 CD는 한장에 1500만원이다. IP를 추적하는 시스템은 3000만원이 넘는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기밀이기 때문에 장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 최강 사이버 수사=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달 미국 시애틀 본사에서 사이버 범죄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면서 사이버범죄수사대를 공식 초청했다. 47개국이 참가한 이 세미나에 다녀온 임판준 경사는 "한국 경찰의 인터넷 IP추적 등의 수사기법을 듣고 각국 수사관들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지난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활약상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국은 현재 일본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년 뒤에 닥쳐올 사이버 범죄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승현.민동기.이수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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