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청동기 시대에 시작, 15세기까지 번영했던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는 이제 흔적만 남아 있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갑자기 역사의 축은 아시아를 떠났다. 그러나 앞선 문명들의 운명을 볼 때 이 '서양의 승리'가 영원한 것일까. 설사 그렇다 해도 바람직한 승리로 볼 수 있는가. 신간 『인류 최초의 문명들』은 고대문명 해설서 역할을 넘어 이런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저자는 우선 도시의 건설과 함께 시작된 이라크·이집트·인도·중국·중앙아메리카 문명의 흥망성쇠를 개략적으로 훑으면서 그 문명들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야만의 문명"에 불과했던 유럽이 어떻게 이 문명들과 만나 현대의 지배문명이 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지구라는 행성의 미래를 쥔 서양의 지배자들"에게 문명이란 것 자체가 보편적으로 건설과 파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 "승리를 거둔 순간에 다른 문명 세계들이 필연적으로 겪었던 몰락의 시간에 접어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같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몰이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BBC방송의 역사 시리즈 대본을 수정·보완한 이 책은 TV용 역사 다큐멘터리와 종이책의 장점을 비교적 잘 접목시키고 있는 것. 즉, 유물이나 장소를 중심으로 서술해나가다 보니 현장감이 물씬 풍기며, 저자가 책을 쓰면서 따로 참조한 문헌자료들은 정보를 양적·질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3장에서 저자는 중국 문명의 상징적인 장소인 타이산(泰山) 정상에 올라 바라본 주변 절경을 생생히 묘사하면서 진시황·공자·마오쩌둥이 했다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말들을 인용하고 있다.

역사와 문명에 대한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도 이 책의 덕목이다. 현대 서양 문명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자와 부처 등 먼 옛날 위대한 사상가들이 한 목소리로 설파했던 지혜를 생각하면서 다른 민족, 다른 문화와 가슴을 툭 터놓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수 기자

note

인류 문명의 첫 5천년을 다룬 스케일 큰 저작이면서 곳곳에 잔재미를 주는 이색적인 주장들이 섞여 있다. 이를테면 서양 가치관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개인주의는 중세 서유럽인들의 만혼(晩婚)에서 비롯됐다는 것. 20대 후반에야 반려자를 찾는 풍습은 핵가족제와 재산의 축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땅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확대라는 세계관에서 벗어나 유럽을 일찌감치 동산(動産) 중심의 사회로 변모켰다는 논리다. 저자는 또 송나라 수도 카이펑의 특징을 '식당문화'로 정의하기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