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의시대 왔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새로운 모습의 강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을 만날 것이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자신이 택한 강의를 들을 것이다.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강의라고 하면 다 한가지이려니 생각하겠지만, 그동안 강의는 방법에 있어 많이 달라졌다. 강의와 실습이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실습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읽어주는 대로 듣고 쓰는 '받아쓰기'수업은 사실은 실습에 해당된다.

설명과 판서만으로 이뤄지는 강의도 이제는 그 방법에 따라 차이가 많아졌다. 칠판에 무엇인가 그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필름으로 그림을 비추는 OHP를 사용하기도 하고, 미술사나 해부학처럼 정밀한 그림을 예시해야 할 경우, 슬라이드로 된 사진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컴퓨터가 일반화된 후 모든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다. 동영상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화면으로 보여주고, 스피커로 들려주며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강의를 저장해둔 다음 인터넷으로 불러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강의를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흔히 사이버 공간의 탄생이니, 디지털이 세계를 바꾼다느니 하는 말로 표현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방송시간에 묶이지 않고 보고 싶은 시간에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화면의 안내에 따라 가고 싶은 화면으로 옮겨 갈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통신망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자, 이쯤 되면 강의를 통해 무엇을 배운다는 개념이 바뀌게 됨을 직감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참여해야만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강의는 쉽게 그리고 널리 전달되게 되었다. 그러나 실습은 예외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자전거나 수영은 책으로 배울 수 없고 인터넷 강의로도 배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정보로서의 학습과 근육운동적 학습의 구별이 앞으로 강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인터넷 강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고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우리나라의 종교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위해 모든 고등학교에서 세계 종교사와 비교종교론을 가르쳐야 하고 학력고사에 이에 관한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자. 그리고 정책 결정자들이 잘못 판단해서 내 의견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시행했다고 하자. 엄청난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온 나라가 두들겨 놓은 벌집이 될 것이다. 정열적인 신앙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강의는 소문 없이 조용히 이뤄지고 있다. '세계 종교사''비교 종교론' 등의 종교에 관한 강의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btni.co.kr에 들어가 보면 1회 30분, 모두 50회에 달하는 여러 강의가 준비되어 있다.

앞으로 한국사·세계사·영문학·경제학·생물학·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강의를 인터넷에 담아두고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정부의 몫이지만, 언론사나 기업의 몫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면의 석학들에게 응분의 연구비를 지급하고 좋은 강의를 담아둔다면 그것은 인문·자연 할 것 없이 학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우리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올리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