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무심코 나오는 말들 그 진심이 물건을 사게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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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남궁연(사진 왼쪽)씨와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이 9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뒤 정원에서 만나 트위터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다 박장대소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조사요원이 정중한 목소리로 “고객님, 무얼 원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해온다면 뭐라고 답할까. 게다가 한 손엔 두꺼운 서류가방과 묵직한 서류철을, 또 한 손엔 조사에 응해줘 감사하다는 표시의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있다면. “아, 뭐. 그다지 불만은 없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등등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을까.

남궁연씨는 “많은 기업은 소비자의 정체를 몹시 궁금해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 이제부터 자유롭게 말해보세요”라고 다그친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사람들은 딱딱한 소통에서는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심은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소통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튀어나오는 농담이나 불평이 바로 진심이 아닐까요. 그 진심이 소비자로 하여금 물건을 사게 만듭니다.”

남궁씨는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물어보고 싶은 것만 물어봤다고 본다. 진짜로 소비자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최근 지방선거 결과의 의외성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조사원들은 각 당이나 기관에서 정한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은 정작 국민이 제대로 답할 질문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주)두산 박용만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KT 표현명 사장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트위터를 개설한 것도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남궁씨는 본다. “조직에서 사원·과장·임원을 거쳐 CEO에게 어떤 사안 하나가 전달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수정을 거칩니다. CEO가 싫어할 얘기를 하기란 쉽지 않죠.”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도 얼마 전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출장 가면 직원들이 ‘사장님, 출장 가서 뭐 하세요’라고 물어요. 저도 거기서 본 것,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지적할 때면 반갑습니다.”

감동

제품의 기능이 훌륭하다고 광고할 때 사람들은 ‘와~ 대단하군’ 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그토록 ‘감탄’스러운 제품이라고 해서 구매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궁씨는 이제 사람들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감동’을 원한다고 본다. 그는 “제가 하루에 서너 번씩 배터리를 충전해 가면서도 외국산 스마트폰을 쓰는 건 그 제품에 ‘감탄’한 때문이 아니라 ‘감동’한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들어있고, 그것들을 아주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 감동하는 거죠.”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인텔이 근래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경영의 화두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곳에 사업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 기업에서 감동의 기업으로 진화하고 싶다”는 이 사장의 말이다.

재즈

재즈 뮤지션인 남궁연씨는 SNS와 재즈·민주주의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재즈의 악보는 아무리 길어도 한 장을 넘지 않는다. 12~24마디짜리 단순한 악보로 한 시간이든 한나절이든 연주한다. 재즈 연주에서 최고의 덕목은 앙상블(호흡)이다. 서로가 내는 음을 자세히 들으면서 리듬을 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연주가 안 된다. 남궁씨는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회 각 부문이 제각각 개성을 갖추면서도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SNS도 그렇다. SNS에서 장광설이나 격문은 통하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언팔(unfollow· 구독중지)’조치 당한다. 두 사람이 뒤늦게 트위터의 세계에 빠져든 것도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다. 이 사장은 “트위터라는 새로운 소통수단의 진화를 예단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왜 트위터가 인기를 얻는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필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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