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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춤 그가 춰야 멋들어진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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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바탕없는 창작춤이 유행하는 시대에 전통무용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

국내 '남성춤'의 권위자인 조흥동(61)씨가 춤 입문 5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밝힌 소감이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랄까. 이 한마디에는 한국춤의 오늘의 모습과 내일의 방향이 집약돼 있다.

조씨는 현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경기 도립무용단장을 맡고 있는 한국 무용계의 중진이다. 지금도 가끔 무대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매방 등 몇몇 스승세대를 제외하면 남성무용의 중추다. 그 뒤로 국수호·정재만 등이 남성춤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조씨의 기념공연 '조흥동 춤의 세계'는 3월 15일(오후 7시)과 16일(오후 5시) 두차례 열린다.

한성준-강선영으로 이어지는 '태평무'의 이수자로서 특장인 '태평무'뿐만 아니라 경기도당굿에서 유래한 '진쇠춤', 남성미 넘치는 '한량무',어린아이의 춤인 '초립동', 여성 군무인 '잔영', 남성 3인무인 '남무3대(男舞3代)', 그리고 조선의 명기(名妓) 황진이를 소재로 한 '화담시정-시가 머물다 간 자리'등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태평무''진쇠춤''한량무'를 제외하면 모두 창작품이다.

어린아이춤인 '초립동'은 조씨의 춤인생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50년 아홉살 때 고향인 경기도 이천 농악패에서 이 작품을 춘 게 춤 입문의 계기였던 것이다.

'춤 입문 50년'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됐다. '초립동'은 전설의 춤꾼 최승희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도 유명하다.

앙증맞은 한국춤의 전형(典型)으로 꼽히는데 조씨는 여기에다 창작을 더했다.

'남무3대'는 조씨와 제자 김정학·정명훈 3대가 함께 하는 뜻 깊은 자리다. 흰색 도포에 갖을 쓰고 큰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추는 '한량무'는 옛 선비의 기품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남성춤으로 조씨가 춰야 제맛이 난다고들 한다.

조씨는 흔히 평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춤사위를 보유한 춤꾼"으로 불린다. 그만큼 배움이 깊고 넓다는 뜻이다.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만도 열일곱명에 이른다. 김천흥·한영숙·이매방·은방초·김석출·박송암 등이 그들이다. 유형별 유파나 계보별로 각양각색의 춤이 그의 몸과 정신에 깃들여 있다.

조씨는 41년 쌀로 유명한 이천에서 대농(大農)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네명의 누이가 있다. 귀한 아들이 어릴적부터 농악패나 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춤에 빠졌으니 가족들이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춤을 계속해 경동중·고를 거쳐 62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중·고등학교 때 나는 춤에 미쳐 살았다." 가족을 속이고 춤을 배우던 당시를 조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국립무용단장을 역임한 조씨는 오랜 행정가 경력도 갖췄다. 10년 이상 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일하며 무용 대중화와 지방무용 활성화에 힘썼다.

안무 능력도 인정받아 '제신의 고향'(74년)'이차돈'(75년)'춤과 혼'(81년)'강강술래'(92년)'무천의 아침'(94년) 등 대작을 남겼다.

조씨는 "세월유수랄까. 어느덧 춤과 함께 보낸 반세기를 맞게 됐다"며 "정성들여 최고의 작품을 엄선한 만큼 작은 화제라도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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