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 경제팀들 잇단 회고록 집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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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문민정부 말기와 현 정부 경제팀의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말문을 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과거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작업이 새삼스레 활기를 띠고 있다. 그동안 기록을 남기는 데 인색했던 우리 풍토에서 바람직한 일이란 평가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할말 많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 낸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민정부 말기에 강경식 전 부총리와 함께 경제팀을 이끌다가 구속까지 됐던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본지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부터 한보·기아사태로 거슬러 올라가며 문민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金전수석은 이를 위해 자신의 홈페이지(www.kiminho.pe.kr)에 그동안의 재판결과를 담은 8천여쪽의 자료를 올려놓고 상당 기간 사전 자료조사를 하는 등 준비를 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공동정권에서 양쪽의 '경제 대표선수'였던 김용환 당시 자민련 부총재(현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장)와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의장(현 민주당 의원)도 곧 회고록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들의 회고록은 숨겨진 얘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정책결정에 참여했지만 이젠 정치적 처지가 달라진 두 사람의 증언은 같은 사안에서도 미묘한 시각 차이를 나타내 주목된다.

대표적인 예가 1998년 1월 임창열 부총리가 추진했던 1백50억달러 규모의 대만 차관 도입 시도에 관한 부분이다.

金위원장은 월간중앙 3월호에 발췌 게재된 회고록을 통해 1백억달러의 대만 차관 유치는 자칫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일이었으나 자신이 DJ에게 재빨리 보고해 막음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金의원의 증언은 다르다. 金의원은 "당시 대만 차관은 1백억달러가 아니라 1백50억달러였으며, 이를 추진했던 전부총리나 나도 처음부터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실제로 들여오기보다는 곧 이어질 외채협상에 '히든 카드'로 사용하려는 입장이었다"며 "곧 펴낼 회고록에 자세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편 DJ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와 경제수석 및 재경부장관을 지낸 강봉균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내부자료를 토대로 당시 경제상황과 정부의 대응을 정리한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전장관은 원고정리를 모두 끝내 곧 회고록을 출간할 예정이며, 康전수석은 지난해 『한국경제 발전전략』이란 제목으로 DJ정부 초기의 금융·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정리한 책을 펴냈었다. 그는 또 최근 이 책의 후편격인 회고록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 1월 물러난 DJ정부의 최장수 경제수석 이기호씨도 회고록 집필에 착수해 다음달 중 탈고할 계획이다.

전수석의 회고록은 최근 5년간 노동부장관과 경제수석을 하면서 겪은 일의 전말과 그때의 심경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YS정부 말기에 재경부 차관을 지낸 강만수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도 삼성경제연구소와 회고록 집필 계약을 하고 원고를 작성 중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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