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사상가는 누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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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열 사람이 학계에서 선정돼 눈길을 끈다. 불교쪽에선 원효·의천·지눌, 주자학에선 이황·조식·율곡, 양명학자로는 정제두, 실학자인 정약용·최한기, 그리고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가 포함됐다.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선정 작업을 한 예문동양사상연구원(원장 김충렬 고려대 명예교수)은 '한국의 사상가 10인' 시리즈를 연말까지 펴내기로 하고 1차분으로 불교계 3인에 대한 해설서를 먼저 출간했다.

10인의 사상가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정제두·최한기·최제우다. 이들 3인은 1980년대 이후에 와서야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으며 최근 박사학위 논문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번 선정작업의 실무를 총괄한 홍원식(계명대 철학과)교수는 "외래 사상을 추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독창적 사상체계를 형성한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10인에 아깝게 포함되지 못한 인물로는 실학자 이익과 의병활동으로 유명한 이항로라고 한다.

누가 10인에 포함됐느냐는 것도 관심거리지만 이번 선정작업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기존의 연구성과에 대한 정리·평가와 연결된다는 점에서다. 그간 동양학계의 고질적 문제로 기존 작업에 대한 검토 부족이 줄곧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책을 쓴 학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깨달은 도력(道力)을 경쟁하는 듯한 풍토도 보인다. 연구사 정리는 동양학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나아가 한국사상사의 체계적 정립을 위한 필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리즈의 구체적 구성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략 50년간 나온 논문과 저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글을 주제별로 선정해 실었다. 권마다 대표 편저자가 50년간 나온 논문들에 대한 총평을 싣고 또 수백 편에 이르는 논문의 목록과 출전도 함께 실어 우리 학계의 연구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했다.

예컨대 한국사상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원효를 다룬 1권의 경우 편저자 고영섭 박사의 해제에 이어 조명기·고익진·이기영·박종홍 등 작고한 분들의 글과 박성배·은정희 교수 등 현역 연구자의 글을 함께 싣는 식이다.

"연구사 정리는 일회성이 될 수 없다. 창의적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홍교수는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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