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감독 영입 효과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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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북중미 골드컵 대회 및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두자 외국인 감독에 대한 우려감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총감독을 맡았던 크라머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대표팀을 지휘했던 비쇼베츠 감독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전철(前轍)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선진 축구기술을 도입하고 국내 지도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거금을 쏟아부어 '모셔온' 외국인 감독이 한국에서 삐걱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특성을 무시하는 외국인 지도자의 미흡한 자질 때문인가, 아니면 그를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국내 축구계의 척박한 토양 때문인가.

▶외국인 감독의 명암(明暗)=독일의 우승으로 마무리된 1990년 월드컵. 그러나 축구팬들에게 독일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 건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8강에 오른 카메룬이었다. 당시 카메룬 대표팀을 이끌었던 사람은 발레리 니폼니시(러시아·사진)감독이었고, 이후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 외국인 지도자 영입이 붐을 이뤘다.

국내 프로구단 부천 SK의 감독을 지내기도 했던 니폼니시는 세밀한 패스망과 미드필드를 두텁게 구축하는 독특한 경기 방식을 카메룬에 적용해 빛을 냈다. 흑인 특유의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카메룬의 개인기는 세계 수준에 버금간다는 평가였으나 팀 플레이는 당시까지만 해도 도무지 제대로 엮이지 않았다.

현재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최다 출전 감독(5회)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는 보라 밀루티노비치(유고)감독은 가장 성공한 외국인 지도자로 첫 손에 꼽힌다. 86년 멕시코, 90년 코스타리카, 94년 미국, 98년 나이지리아를 모두 16강에 올려놓은 바 있다.

반면 94년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카를로스 파레이라(브라질)감독은 98년 '오일 달러'의 수혜 속에 사우디아라비아팀를 맡았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2패를 기록하면서 대회 도중 하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역량의 결집이 과제=축구협회 관계자는 "아무리 대표선수라도 10여년간 몸에 익은 잘못된 폼과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외국인 감독이 1년 사이에 이를 말끔히 뜯어고치기를 기대하는 건 과욕"이라며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에 비난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축구계의 배타성을 비난하는 지적도 많다. 한 축구팬은 "중책을 맡은 벽안의 감독에 대한 국내 축구인들의 질투와 시기는 과연 없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신문선 본지 해설위원은 "히딩크가 사생활 측면에서 경솔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 축구대표팀 부진의 책임을 그에게만 덮어씌울 수는 없다"고 말하고 "남은 기간에 한국 대표팀이 서둘러 보강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축구협회와 축구인, 그리고 축구팬들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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