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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稅風'… 與 반색 野 긴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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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97년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혐의를 받고 미국에 도피 중이던 이석희(李碩熙)전 국세청 차장의 검거소식에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사건이 지닌 폭발력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쳤던 15대 대선 직전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朴柱宣의원)며 반색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4년 내내 우려먹은 사건"(洪準杓의원)이라면서도 경계하는 모습이다.

여야는 여름께로 예상되는 李씨의 송환이 12월 대선에 어떤 변수가 될지를 분석하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석희씨가 소환되고 세풍논란이 다시 불거지면 대선 분위기가 조기 과열되면서 여야의 상호비방이 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겉으론 태연, 내심은 긴장=이회창 총재는 이날 이석희씨 검거소식을 전해듣고 "그러냐"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고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이 전했다. 南대변인은 "법대로 처리하면 되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여준(尹汝雋)기획위원장은 "李총재가 대선자금 모금을 시켰거나 최소한 묵인한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검찰은 집권 초기의 검찰과는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오(李在五)총무는 "체포경위나 과정, 그리고 정부가 왜 이 시점에서 발표하는지를 파악 중"이라면서 "여당이 선거나 정치공세에 이용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한나라당은 이날 김봉호(金琫鎬)전 의원이 이용호(李容湖)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이 돈이 권력핵심으로 흘러들어간 로비자금의 배달료라는 의혹이 있다(장광근 수석부대변인)"며 대여 맞불공세를 폈다.

세풍사건의 한나라당측 변호인인 엄호성(嚴虎聲)의원은 "李씨를 체포한 게 미국 사법당국이니 공작으로 몰아붙이긴 어렵다"면서도 "이 사건은 명백한 정치적 사건이고 본인이 망명을 원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嚴의원은 "핵심은 李씨가 李총재의 동생 회성씨와 공모했느냐의 여부인데 우리는 공모가 없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다음 대선이 큰 쟁점 없이 진행될 경우 세풍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수도 있다"면서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진상 드러나면 李총재 타격"=민주당에선 "잘못 다루면 오히려 역효과 난다"면서 조심스레 대응하려는 분위기다. 총풍(銃風), 한나라당의 안기부 예산 전용 등도 여야간 진흙탕 싸움만 벌이다 본질이 흐려졌다는 자체분석 때문이다.

정세균(丁世均)의원은 "李씨의 검거로 여당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심재권(沈載權)기조위원장·전용학(田溶鶴)의원 등은 "진상이 규명되기만 해도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정치공세로 몰고 가다간 야당에 공격의 빌미만 준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함승희(咸承熙)제1정조위원장은 "李씨의 신병이 선거 직전에 넘겨지면 오히려 아무런 진상도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 빨리 데려와야 한다"면서 "징세권과 검찰권 악용은 국가를 타락시키는 가장 악질적 범죄라는 대국적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채정(林采正)국가전략연구소장은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종혁·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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