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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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행기를 탈 때 왜 기체 왼쪽 문을 반드시 통하도록 돼 있을까. 선박이 항구로 돌아오면 왜 좌현 접안을 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째서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차며 결혼반지는 왼손의 약지에 끼우는 걸까. 육상경기가 벌어지는 트랙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리게 돼 있지 않은가. 엄마가 무심코 아기를 껴안을 때도 어째서 왼쪽 가슴을 찾게 될까. 훈장을 다는 곳도 역시 왼쪽 가슴이지 않은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종합해보자. 선박은 기원전부터 방향타의 위치와 그 구조상 항구(port)에서 사람이나 화물을 내리기 쉬운 좌현 접안을 선택했고 비행기도 '하늘의 항구'(air-port) 로 불리는 공항에서 선박의 룰을 이어받아 기체의 왼쪽 탑승을 관례로 해왔다. 손목시계의 왼손 착용은 상대적으로 사용빈도가 적은 왼손이 '정밀기계'의 충격을 줄이는 데 안성맞춤이고 자주 쓰는 오른손 놀림에 비해 덜 불편하기 때문. 왼손 반지는 왼쪽 심장에 가까워서, 왼쪽 방향의 육상 트랙은 선수들의 왼쪽 심장과 왼쪽 발에 몸의 중심이 쏠리기 때문에, 아기를 왼쪽 가슴에 껴안는 것은 엄마 심장의 고동이 들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왼쪽 훈장 패용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왼쪽 심장 연관설과 민족을 불문하고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왜 왼쪽을 가리키는 좌(左)라는 단어에 우둔하다든가, 또는 열등의 이미지가 담겨 있는 것일까. 공무원을 포함한 샐러리맨들에게 좌천(左遷)만큼 상처를 주는 일이 없다. 고대 중국의 한 시기에 회의의 자리 순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결정된 적이 있었다. 말단 직급이 왼쪽 끝에 앉게 됐다는 연유로 좌천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왼쪽 서열이 다시 높아져 중국이나 우리나라·일본에서 좌의정 또는 좌대신 등이 '우'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서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사회생활에 대한 불만들이 제기되면서 동호회들의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도 왼손잡이만을 위한 생활용품을 따로 판매한다. 국내 왼손잡이들은 약 2백만명. 성인의 5%, 어린이의 17% 정도다. 일본에서는 관계자들이 지난 10일을 '왼손잡이의 날'로 제정하고 이번주 내내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있다. 왼손잡이들에게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성공에 대한 동기감을 불어넣어 주려는 의도다. 미국에서 이미 창립된 국제왼손잡이협회의 '나는 왼손잡이를 사랑해'라는 플래카드도 내걸고 있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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