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준 탈주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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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탈북자 유태준(劉泰俊)씨 소동을 놓고 갖가지 의혹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의혹들은 처음엔 劉씨의 재탈북 및 재입국 과정을 둘러싸고 일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리 관계당국의 대응과 개입 여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국가정보원은 14일 오후 劉씨의 기자회견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당혹과 분노는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북한의 보위부 감옥에 갇혔다가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도 사랑한다"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석방됐다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劉씨의 이런 진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국정원의 사전 조사가 끝난 후에 기자회견이 열렸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원 등 관계당국은 劉씨의 기자회견 내용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만 하루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국민 사이에 의혹과 억측이 확산되도록 방조한 셈이다.

그 때문에 이제 의혹은 劉씨의 믿어지지 않는 발언내용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방치한 관계당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과연 관계당국은 언론이 그의 탈주 허구성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갈 생각이었을까. 국정원은 이번 기회에 劉씨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수지 金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채 사라지지 않은 시점에서 또 뭔가 숨긴다는 의혹이 팽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劉씨의 재입북·탈출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중국에서 체포된 그가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한국으로 추방될 수 있었는지, 또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줬다는 당국의 설명과 달리 그가 가지고 있었던 새 여권의 출처와 발급 경위는 무엇인지도 해명해야 한다.

정부는 민감한 시기에 발생한 이 탈주 의혹을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히고 이런 혼란을 방치한 책임을 엄중히 추궁하는 한편 허술한 탈북자 관리체제를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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