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 물꼬 트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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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을 평화의 축에 맞물려 돌아가게 하려는 우리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14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남북 당국회담의 조기 재개 구상과 함께 한·미 정상회담 직후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먼저 회담에 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지 않으냐"며 이달 중 북측에 회담 재개를 제안할 방침임을 밝혔다. 최근까지 언급을 피해온 것과 달리 적극적 태도다.

특히 한·미가 협의해 북한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할 경우 남북한과 북·미 관계에 동시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 양측은 이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전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의 비밀 방북과 조명록-올브라이트간 평양·워싱턴 교차방문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특사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대화를 통해 대량살상무기(WMD)문제를 풀자'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부시 방한 전 적어도 남북대화 날짜라도 잡자'는 선(先)분위기 조성방안이 차질을 빚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발 대북 강경 발언으로 구도가 헝클어졌지만 한·미 정상회담 후속조치에 전력하겠다는 복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양이 한·미측 구상대로 끌려올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부시 진영의 테러전쟁과 '악의 축' 발언으로 잔뜩 위축된 북한이 선뜻 미국과의 대화 테이블에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11월 금강산 6차 장관급 회담 결렬 이후 서먹해진 남북관계도 좀체 해빙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金위원장은 연초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이례적으로 직접 방문한 이래 ▶주북 중국대사 면담(10일)▶러시아 특사 접견(11~12일) 등 미국 견제 카드를 꺼내들 기세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한반도 정세 전반을 감안한 장고(長考)를 거쳐 생존전략 차원의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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