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 붙잡혀 32년형 선고 감시소홀 틈타 감옥 담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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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에 억류됐다 재탈북에 성공해 지난 9일 극적으로 귀환한 유태준(34)씨의 스토리는 탈북→남한 정착→재입북→체포→기자회견→탈옥→중국 당국에 체포→서울 귀환으로 이어진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관계당국의 조사를 마친 뒤 13일 서울에서 어머니 안정숙(59)씨 등 가족과 만난 씨는 "자살하고픈 충동까지 느꼈지만 첫 탈북에 성공했을 때 스스로를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점을 떠올리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재입북과 탈북 경로=북한의 아내 崔모씨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한 것은 2000년 6월. 씨는 곧바로 북한 접경지역으로 달려가 기회를 노렸다.
북한 경비병 4명이 "아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해 북한에 들어갔으나 거짓이었다.그는 처가인 함흥까지 갔으나 장모가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해 함북 무산지방까지 피했지만 6월 30일 국가안전보위부에 잡혔다.
청진을 거쳐 평양으로 끌려온 그는 보위부 감옥에서 10여분간의 '약식재판'을 통해 노동교화형(3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치범을 다루는 청진 25호 교화소에 수감됐던 그는 지난해 5월 평양으로 다시 이송됐다가 대남연락소 초대소로 옮겨졌다.
여기서 그는 재입북이 북한체제를 동경한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준비했고 이는 지난해 6월과 8월 평양방송을 통해 두차례 보도됐다. 남한의 인권단체들이 씨의 입북 이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인권단체와 함께 북한 당국을 압박한 데 따른 조치였다.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씨의 '처형설'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회견 이후 북한 당국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지난해 11월 10일 보위부 담을 넘어 평남 순천으로 간 뒤 기차를 몰래 타고 함북 길주로 이동했다. 혜산까지 걸어서 간 그는 압록강을 건너 같은달 30일 중국 창바이(長白)에 도착했다.
그러나 현지인의 고발로 중국 공안에 잡혀 70일간 억류됐으나 한국국적을 이미 취득한 점을 내세워 우리 관계당국에 인도됐다.
◇의문점과 정부 반응=씨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탈북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게 탈북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아내를 찾기 위해 북·중 국경지역에 갔고, 북한사정에 밝은 씨가 경비병의 말에 속아 입북했다고 말한 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 특히 삼엄한 경비로 유명한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에서 특별관리를 받던 그가 빠져나왔다는 점도 그렇다.
국정원 관계자는 "입국 후 불구속 상태에서 대공 용의점 등을 수사한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가족에게 인계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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