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저널紙 펄 기자 파키스탄서 피랍 언론·무장조직 '밀월'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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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기자와 무장조직간의 밀월 관계는 영영 깨지고 말 것인가.
월 스트리트 저널(WSJ)의 대니얼 펄(38)기자가 지난달 23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한 이슬람조직 지도자를 인터뷰하러 가다가 실종됐다. 1주일 뒤 한 무장조직이 e-메일을 통해 "펄을 납치했으며, 미국이 쿠바에 구금 중인 탈레반 전사와 알 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등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를 처형하겠다"고 협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아시아 이슬람 급진파 분쟁지역의 기자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미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지난 4일 분쟁지역의 무장조직과 취재기자의 미묘한 공생관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분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기자들은 무장 조직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무장 조직은 자신들의 입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이 관계가 흔들리고 있으며 특히 9·11 미 테러 이후 이러한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 무장조직원은 '우리의 신념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기사를 쓰는데 뭣 때문에 기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겠느냐'고 비난했다"라는 파키스탄 영자주간지 기자의 말을 인용했다.
일부에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분개한 무장조직이 서방기자들을 공격대상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제2의 펄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쟁지역의 대다수 기자들은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무장조직이 그들의 뜻을 외부에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펄 기자의 생환여부가 양측의 공존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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