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과거사 법안 싸고 충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8일 밤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법사위원장석 주변을 에워싼 채 밤새 지키고 있다.김형수 기자

'법제사법위 대충돌'로 야기된 파행이 정상화된 지 하루 만에 국회는 다시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8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또 고함과 막말을 주고받았다. 새로이 행정자치위에서도 신경전이 펼쳐졌다. 여당의 과거사 법안 상정 문제를 놓고서다. 그러나 양당은 접촉 끝에 정기국회 폐회일인 9일엔 여당의 과거사 법안과 그와 유사한 한나라당 법안을 각각 행자위와 교육위에 동시에 상정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 "친일 법안도 잘 처리했는데…"=8일 행자위 회의장은 친일진상규명법안을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조용했다. 비록 표결처리란 형식을 거쳤지만 여야가 두 달 이상 머리를 맞대고 합의안을 끌어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간사인 박기춘 의원이 과거사진상규명법안의 상정을 위해 의사일정변경 동의안을 표결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한나라당 간사인 이인기 의원은 "한나라당의 과거사 법안은 교육위에 계류 중"이라며 "교육위와 같은 날 상정하는 게 균형에 맞다"고 했다.

여당 소속인 이용희 위원장은 "법에 따르면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은 받아줘야 한다"며 표결에 부쳤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몰려가 위원장 석을 에워쌌다. 대치가 계속되자 이 위원장이 수습에 나섰다. 그는 "날치기는 안 한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이)자리로 안 돌아가면 (의사봉을) 쳐버릴껴"라고 말했다. "그 어려운 친일진상규명법도 잘했는데 별것도 아닌 것으로…"란 말도 했다. 그는 의원들이 자리에 앉자 법안을 상정하지 않고 산회를 선포했다.

◆ "두 번 날치기는 안 된다"=법사위에선 한나라당 의원들의 위원장석 확보 작전이 계속됐다. 여당 측이 보안법 폐지안을 기습적으로 재상정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오전 9시40분부터 김용갑.이방호 의원 등 30여명이 나섰다. 20분쯤 뒤 여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설전이 시작됐다. 여당의 최재천 간사가 "간담회를 시작할 테니 (회의장)마이크를 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야당 의원들이 "마이크를 켤 권한은 위원장에게만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함부로 말하지 마""어디다 대고 손가락질이야"등의 고함이 오갔다. 2시간여 만에 최재천 의원은 "12월, 1월 내내 회의 소집을 요구할 것"이라며 떠났다. 김용갑 의원은 "우리는 아예 텐트를 치고 회의장을 지키겠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온종일 회의장을 지켰고, 일부는 밤샘을 했다.

지도부 간 대치도 팽팽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 응하지 않으면 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 유보 방침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여당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소영.신용호.고정애 기자 <oliv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