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천안함 안보리 의장성명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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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수길(현 유엔협회 세계연맹 회장·사진) 전 유엔대사는 “지난달 방한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가 천안함 사태가 안보리에 회부되면 (대북 제재나 규탄 결의 대신) 의장성명으로 처리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6일 밝혔다.

박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버시바우 차관보가 ‘(한·미가) 이란 핵문제에서 중국의 지지 확보에 역점을 두게 되면 (천안함은) 의장성명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고 해 ‘한국으로선 절대 받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이란 핵문제에서 중국의 지지가 절실한 처지여서 천안함 사건은 의장성명 선에서 중국과 타협할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그러나 천안함은 6·25 이래 최고 중대사인 만큼 끝까지 결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시바우 차관보(전 주한 미국 대사)의 이 입장은 직속 상관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4일 싱가포르에서 “한국이 전면적인 대북 결의를 추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함 동해 침투사건 발생 당시 주 유엔대사를 지낸 박 회장은 “당시에도 우리는 대북 ‘결의’를 추진했지만 매들린 올브라이트 주 유엔 미 대사와의 협의 끝에 의장성명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려는 입장이어서 (의장성명마저도) 안 따라오려 했지만, 우리가 계속 강하게 나가니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사건 5일 만인 9월 23일 김형우 당시 주 유엔 북한 대사가 ‘우리 잠수함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한 것일 뿐’이란 거짓말 서한을 안보리 의장에게 보냈다”며 “같은 날 우리가 이를 반박하는 서한을 보내자 북한은 나흘 뒤 김영삼 대통령(당시)을 ‘역도(traitor)’로 지칭한 반박 서한으로 응수했고 다시 우리가 10월 3일과 11일 정부 입장과 국회의 대북 규탄 성명을 알리는 서한을 보내는 등 남북 간에 ‘서한 경쟁’이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사건의 전모를 잘 알았던 러시아는 우리에 동조했으나, 중국은 ‘남북 간에 알아서 풀 문제’라며 끝까지 의장성명에 반대했다”며 "결국 안보리 회의장 한쪽 골방에서 본인과 공로명 당시 외교부 장관이 중국 외무장관·주 유엔대사와 4자대면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자리에서 중국은 의장성명은 받아들였지만 문구 하나하나를 놓고 피 말리는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협상에서 중국이 ‘북한의 잠수함 침투(infiltration)’란 사건 명칭 자체에 반대해 ‘북한’은 살리는 대신 ‘침투’를 ‘사건(incident)’으로 낮추는 선에서 문안이 타협됐다. 중국은 “북한을 규탄(condemn)한다”는 문구도 반대했다. 결국 “북한에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를 표명한다”는 선에서 의장성명이 정리됐다고 박 회장은 전했다. 박 회장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이 곧 방중해 중국을 설득할 것”이라며 “중대한 진전을 이룰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안보리 결의(resolution)=안보리 결의는 유엔 헌장에 따라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표결을 통해 채택하며 상임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을 포함해 9개 이상의 이사국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5개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갖는다.

◆의장성명(presidential statement)=결의보다 한 단계 낮은 조치로, 구속력이 없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식 결의를 채택하는 대안으로 활용된다. 투표가 아닌 이사국들의 컨센서스로 통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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