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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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호 02면

국민학교 4학년 땐가, 온 가족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를 찾았습니다. 현충일이었습니다. 며칠 전 보이 스카우트에서 묘역 풀 뽑기 행사를 다녀온 터라 사실 좀 귀찮았습니다. 아버지는 앞장서서 현충탑(사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곳은 마음대로 막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일정 인원씩 시차를 두고 참배하도록 한 곳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여길 왜 오셨을까-.

EDITOR’S LETTER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박정희 대통령이 쓴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 앞에서 누군가 대표로 분향을 하고, 묵념을 마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냉기가 스며있는 차가운 공간은 향불과 꽃 내음으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순간 벽면마다, 복도마다 빽빽하게 새겨진 손톱만 한 까만 글씨들이 보였습니다. 이병 ○○○, 중사 ○○○, 소위 ○○○….

아, 저는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아올랐습니다. 이곳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 영혼을 위로하는 명부전(冥府殿)이었던 것입니다.

“묘역에 비석이 마련된 분들과 달리 이곳은 전사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분들을 모신 곳이란다. 자, 큰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한번 찾아볼까.”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새겨진 벽면 앞에서 우리 가족은 묵념을 했습니다. 이상한 기분에 살짝 고개를 들었던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아버지가 우시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이곳은 저희 가족의 현충일 나들이 장소가 됐습니다. 몇년 전 외국 출장으로 이 모임에 빠졌을 때, 수화기 속 아버지는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현충원에 갔다가 DNA 검사를 했다. 너희 큰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지도 모르잖니.”

또다시 현충일입니다. 저희 가족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현충탑을 찾을 예정입니다. 하수상한 시절에 ‘조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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