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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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무 것도 아닌 소리

서 벌

발 시려 동동거린 별들은 보이잖고
드디어 함박눈이 막무가내 쏟아진다.
얼마나 참았던 걸까, 쏟는 쪽쪽 다 쌓인다.

한 시절, 이런 녘엔 어울려 떠들었다.
시방은 집으로 가 호젓이 눕고 싶다.
고맙게 데려다 줄 차여, 어디쯤 와 막혔느냐.

눈은 주제 발표, 끝낼 생각은 아예 없고
갈수록 한 초로(初老)는 벌벌 떠는 말없음표.
이 경황 풀자고 하면 어떤 경(經) 봐야 하지?|◇시작노트
어느 한겨울 밤 함박눈 쏟아질 때,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진실로 내가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발은 줄곧 시려오고, 어깨 마구 쑤시고, 무릎도 나의 것 아니었고, 다만 집으로 가 누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간 젊음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초로(初老)에 겨우 알게 됐으므로, 이같은 푸념 따위나 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약력
▶1964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
▶1970년 시조집 『각목』 출간.
▶1992년 중앙 시조 대상 수상.
▶월간 『시조문학』과 『조선문학』, 계간 『시와 수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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