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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삼성·LG 리더학 보는 눈이 넓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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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삼성전자가 만든 디지털 TV를 살펴보고 있다. 이 회장 왼쪽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오른쪽은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 삼성

삼성 경영진의 두 축은 비서실 출신 인맥과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 최고경영자(CEO)'다. 기업 환경의 변화로 갈수록 중요성을 더하는 게 테크노 CEO 쪽이다. 공학 전문지식과 경영 실무능력을 겸비한 엔지니어 출신 CEO는 삼성이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휴대전화 등 분야에서 세계 정상 브랜드로 도약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삼성의 회장.사장단 46명 중 공과대 출신은 15명이나 된다. 상경계 출신(22명)에 못지 않은 규모다. 특히 전자 관계사 15명의 부회장.사장 가운데 9명이 전자.전기 공학도 출신이다.

테크노 CEO의 중용은 이공계를 중시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이 회장은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갖췄다면 대학 전공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자업종처럼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조건이 되는 회사에선 CEO가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은 공학도는 아니지만 새로 나온 웬만한 전자제품을 직접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결함과 장점을 지적할 정도로 기기에 밝다. 하지만 기술자라고 해서 자기 분야에 파묻혀 넓게 보지 못하면 CEO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회장이 싫어하는 CEO의 행동 유형은 ▶숫자를 너무 중시해 쫀쫀하게 작은 것만 챙기는 것 ▶발상의 차원이 낮은 것 등이다. 이 때문에 삼성의 테크노 CEO들은 경영과 기술 뿐만 아니라 역사.인문.음악과 심지어 골프에까지 식견이 많은 '팔방미인'이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삼성의 간판 테크노 CEO들은 전자 관계사에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이기태 정보통신 총괄 사장(인하대 전자공학과),이상완 LCD 총괄 사장(한양대 전자공학과),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서울대 전기공학과) 등은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스타급 테크노 CEO다. 종합기술원장을 맡은 이윤우 부회장(서울대 전자공학과)은 삼성의 반도체 역사를 초창기부터 써온 '토종 엔지니어 CEO'다. 권오현 시스템 LSI 사업부 사장과 임형규 CTO(최고기술경영자)도 차세대 분야를 짊어진 테크노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들은 윤종용 부회장을 이어 삼성전자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로 꼽히고 있다.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이석재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등도 삼성 내 알아주는 테크노 CEO들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되는데 테크노 CEO들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상 기자<leehs@joongang.co.kr>

▶ 구본무 LG 회장(앞줄 오른쪽)이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50여명의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CEO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LG

구본무 LG 회장은 요즘 임직원들에게 승부근성과 독종의식을 갖추라고 다그친다. 그룹 이미지도 '강하고 역동적인 LG''1등 LG'를 지향하라고 주문한다.글로벌 경쟁시대에 정상급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는 원래 LG그룹에게 낯설게 보인다.LG 하면 온화하면서 보수적인 '인화(人和)'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구 회장 자신도 차갑고 날카롭기 보다는 따뜻하고 솔직담백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갖도록 스스로 변하려는 취지다.

특히 1등 기업이 되려면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친 우수인재를 뽑아서 키우는 게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근래 수시로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인재를 모으고 기르는 일을 경기 여건에 관계없이 꾸준히 해달라. 종전의 관행을 무시하고 해외에서도 과감하게 인재를 데려오라"고 지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구 회장은 지난달 말부터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30층 집무실에서 최고경영자(CEO) 보고회의를 시작했다. 계열사 대표들은 올해 실적과 내년 사업전략 이외에 핵심인재 확보방안을 들고 들어간다. 구 회장이 근래 구체적인 인재 확보 방안을 챙기기 시작한 때문이다.

LG의 혁신을 주도하는 CEO는 김쌍수 LG전자 부회장과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등이다.

김 부회장은 LG전자가'강한 회사, 강한 인재(GCGP)'가 되야 한다고 독려한다. 글로벌 우수 인재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해야 최고 회사가 된다는 게 지론이다. 국내 대학에 특강을 즐겨 나가거나 해외출장 때 가급적 대학을 많이 방문하려는 것도 우수인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유치해 볼까 하는 욕심 때문이다. 그는 현장 중심 경영스타일을 바탕으로 임직원들에게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그의 근무 일정은 '현장 70%,사내 30%'원칙을 지키고 있다. 생산성 향상운동인'6시그마'로 회사가 해마다 20% 이상 성장한 것도 그의 추진력이 한 몫했다는 평가다.

구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세계 1등 LCD 회사'라는 키워드를 던져 놓고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심어주려고 한다. 심지어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임직원들과 마주칠 때 인삿말도 "일등합시다!"일 정도다.

LG CEO들은 고객은 물론 직원들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구 회장은 누구를 만나든 약속시간보다 30분 미리 와서 기다릴 정도로 약속 준수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상국 LG그룹 부사장은 "고객과 투자자, 주주, 사원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도경영.투명경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원호 기자<llhll@joongang.co.kr>

*** "변화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추락"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사상 최대의 매출.순익으로 눈부신 경영성과를 올리는 삼성전자지만 윤종용 부회장(60.사진)은 틈만 나면 '위기'를 되뇐다. 사업보고를 받을 때 잊지 않는 말이 "10년 뒤 뭘 먹고 살지 고민하자"와 "잘 나갈 때 조심하자"는 것이다.

-위기론을 자꾸 내세우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잘 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수 불황이 지속되고 원자재난에다 환율 불안까지 겹쳐 대내외적으로 시계가 불투명하다. 현실에 안주해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순식간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게 기술산업이다."

-삼성에선 테크노 CEO가 대접받는다.

"관리중심의 경영이 중요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변모하면서 기술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기술을 모르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기술자 CEO의 중요성은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삼성전자 같은 거대 조직의 경영 철학이라면.

"임직원들에게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을 자주 강조한다. 실제로 만져 보고, 느껴 보고, 경험해 보고, 토론해 보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 그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에다 지혜까지 쌓을 수 있는 덕목이다.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이라는 다윈의 진화론도 자주 인용한다. 기업경영은 혁신의 연속이며, 혁신은 희생과 인내력을 요한다."

그는 1년에 석달 정도 해외출장을 간다. 여행 중에도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현상 기자

*** "의사결정 투명하면 만사 OK" LG화학 노기호 사장

181cm의 훤칠한 키에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하는 노기호(57.사진) LG화학 사장은 '대충'이 통하지 않는 최고경영자(CEO)다. 직원들에게'아는 일'보다'행동하는 일'을, '지식이 많은 인재'보다'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인재'를 강조한다. 흔들리는 통근버스 속에서도 사업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해 국내 최대의 화학업체를 일군 일꾼이라고 주변에서 그를 평가한다.

-1999년 어려울 때 외자 2억5000만달러를 유치했다. 여러가지 성공작이 많은 경영인으로 꼽히는데.

"과거의 성공 경험은 쉬 잊는 편이다. 경영인이 한순간 잘못 판단하면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성공한 프로젝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각오로 다른 일을 벌이려고 애쓴다."

-인재경영이 갈수록 화두가 되는데.

"우수 인재란 회사를 이롭게 하는 존재 아니겠는가. 명문대 박사면 뭐하나. 수익에 기여하지 못하면 소용 없다. 어딜 가나 인재를 찾고,이들을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게 CEO의 책무다."

-CEO 철학이 '열린 경영'이라 들었다.

"투명.정도.실행 경영이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눈높이 경영'이기도 하다. 경영진이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면 만사가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직원들은 분석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CEO 리더십의 필수조건이라면.

"비전 제시와 후진 양성, 갈등 조정,칭찬 및 격려 네가지다. 리더는 올바른 전략을 제시하고 직원들을 키워 줘야 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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