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배우자공제 잘못하면 '딱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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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42)씨는 최근 인사부장에게서 국세청이 '연말정산 부당 공제자'로 통보해왔으니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난해 연말정산에서 배우자 인적공제를 받을 수 없는데도 이를 속여 20만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던 임씨는 부인으로부터 "친구의 권유로 4~5개월간 학습지 아르바이트 교사로 일하며 420여만원가량의 수당을 받은 적이 있다"는 고백을 듣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임씨는 "연말정산이 잘못됐다고 고지하고 받아가면 될 일을 회사에 통보해 망신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회사에서 인사고과의 자료로 활용한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 연간 총수입이 416만원을 넘으면 배우자 공제 대상서 제외된다.

30여만명의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들이 단순한 실수로 배우자 인적공제를 잘못해 국세청으로부터 '부당 공제자'로 지목받자 이에 대한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탈세 의도도 없었고 세법이 어려워 실수를 한 것인데 국세청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마치 '탈세자'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25일 배우자의 연간 소득금액이 100만원이 넘는데도 부당하게 인적공제를 받은 납세자 30만명(38만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 복잡한 공제 절차=일반적으로 이자소득 등 다른 소득이 없는 월급생활자가 연간 급여소득 총액이 700만원이 넘지 않으면 연간소득금액이 100만원 이하인 것으로 계산된다. 소득세율은 과표에 따라 9~36%여서 배우자 공제를 받을 경우 세금은 9만~36만원 정도가 줄어든다. 그러나 배우자 공제를 받기 위해 배우자의 연간소득 금액을 계산하는 방법은 ▶다단계판매원 등 사업자▶건설 등 일용직 근로자▶원고료.인세 등을 받는 기타 소득자인 경우 등 직종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배우자가 사업자인 경우 정확한 소득 금액은 부가가치세 신고금액(매출액), 업종별 기준경비율 등이 확정되는 4월이 돼서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연말 정산 서류는 12월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연말정산 절차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당 인적공제를 받은 사실이 통보되면 봉급생활자들은 미납한 세금 외에 가산세를 내야 하며 회사에 탈세 혐의가 통보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납세자 30만명이 한꺼번에 같은 실수를 했다면 국세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 억울함 호소 잇따라=국세청은 이들 부정 환급자에게 10%의 가산세가 포함된 세금을 추징하고, 허위 증명서를 발급했을 경우 해당 직원 등을 중징계하도록 관계 기관에 지시했다. 그러나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납세자들의 항의가 하루에도 30~40건씩 쏟아지고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김모씨는 "아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려워 올해 급여를 한푼도 받지 못했지만 경리 담당자가 급여를 받은 것처럼 신고해 졸지에 탈세자가 돼버렸다"고 항변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법을 몰라서 실수한 사람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세금을 탈루하려고 속인 사람도 적지 않다"며 "구체적인 적발 기법을 밝히는 것은 곤란하지만 국세종합전산망(TIS)에 수록된 가구별 소득자료 등을 이용, 탈세를 할 경우 반드시 적발한다"고 강조했다.

손해용.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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