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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영화 아니면 관치라도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정부 보유 은행주식 매각추진 방안은,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국유화한 은행들의 민영화 일정과 방법을 비교적 소상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한.하나.한미은행 등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국영체제인 현재의 은행산업 구조에선 효율성이나 경쟁력에 한계가 분명한 만큼 민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에는 국내외에 이견이 없다.

매각방안의 골자는 한빛은행의 주인인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조흥.서울은행의 정부 보유 주식을 올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하면서 3~4년 안에 민영화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민영화 의지는 빈약한 대신 정부지분 매각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예컨대 정부는 우리금융과 조흥은행의 정부지분을 50% 미만으로 낮춰 실질적 민영화를 달성하는 시점을 내년 이후로 잡고 있다.

골치아픈 민영화 문제는 다음 정권에 넘기고 올해는 주식처분에만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서울은행을 올해 중에 매각하겠다지만 정부가 우량은행과의 합병을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서울은행 인수에 관심있는 우량은행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지분을 줄이는 방법도 따져봐야 한다. 액면가로만 9조원이 넘는 방대한 물량이라 증권시장의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장을 피해 국내외에서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해 한꺼번에 10~20%의 지분을 넘겨주는 방안을 우선 추진할 방침이지만,최근 현대투신의 매각협상 결렬 같은 시행착오를 막아야 한다는 점이 과제다.

어차피 민영화보다는 지분 매각이 목적이라면 은행경영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은행의 인사나 경영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관치(官治)금융'시비가 계속되는 한 정부지분을 아무리 줄여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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