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고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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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24일 71세를 일기로 타계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유럽의 대표적인 좌파 이론가다.

고려대 현택수(玄宅洙.사회학)교수는 "좌.우의 이념으로 그를 평가하기는 힘들다"며 "우리 시대의 억압을 성찰적으로 비판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며 애도했다.

玄교수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대학원(EHESS)에서 부르디외에게 배웠고, 세계화를 비판한 그의 저서 『맞불』을 번역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평론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문고판 '자유.행동하는 지성'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획일화를 비판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했다. 이 때문에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고인은 스페인과의 접경지대인 남프랑스 베아른에서 태어나 프랑스 지성인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58년 알제리 전쟁에 징집돼 알제리대의 철학과 조교로 근무하면서 그 나라의 사회현실에 충격을 받아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꿨다. 그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학자들을 초빙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는 자리에서 "사회학은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주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강의에 대한 강의』(81년.동문선 刊)

프랑스 보수주의 사상의 대부인 레몽 아롱 밑에서 조교생활(60~61년)을 한 그는 64년 사회과학고등대학원에 교수로 취임했다. 자크 데리다도 현재 이 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다.

이후 고인은 자신이 전개하는 이론의 핵심인 '아비튀스(Habitus)'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알제리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적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아비튀스 개념을 정립했다. 아비튀스란 '인지(認知)판단 행위의 성향 체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그는 무의식적이고 보이지 않는 구조에 의해 행위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한 개인은 주체와 구조가 통합된 가족.학교 등의 아비튀스 속에서 일정한 성향을 갖도록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시각으로 사회 빈곤과 기회의 불균등에 주목했다.

특히 학술지 『사회과학 연구』에 발표한 논문들을 통해 지식인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지식인들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마지막 강의에서 "학문의 장(場)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도의 장에서는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직에 안주하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고독하게 투쟁했다. 특히 "조종사 없는 항공기처럼 위험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학자가 아니면 지휘자가 됐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부르디외는 자신을 만나러 몰려드는 많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강의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바꿔야 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열의를 갖고 제자들의 연구논문을 교정해줬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부르디외의 연구는 자본주의 비판의 최첨단이었다"는 내용의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재생산』(동문선刊), 『구별짓기』(새물결刊), 『남성지배』(동문선刊) 등 그의 저서가 번역돼 비판적 지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이훈범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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