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모든 인생은 아름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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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엊그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TV 드라마를 보았다. 멀쩡한(?) 직업과 멀쩡한 외모를 가진 게이 커플의 눈물겨운 얘기다. 과연 거장 김수현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게이나 레즈비언이 숨어 살아야 할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할 때가 된 것이다.

1982년이던가. 미국에서 게이인 한 교수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스스로 게이임을 밝히고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경영학과 교수였는데 음식솜씨가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도 미국에서 많은 동성애자를 만났었데 대부분이 전문직인 이웃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미 그 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버린 것이다.

앨프리드 킨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은 원래 양성애자인 셈인데 그중 10%가 동성애자라고 한다. 열 명 중 한 명꼴로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셈이다. 이들 중 99%가 성적 취향을 바꿀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당장 먹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운명이라는 말이 믿어지기도 하고, 그들의 힘겨운 고통도 짐작이 간다.

동성애는 병이 아니라는 발표가 미국에서 있었다. 병이 아니니 고치지도 못하고 치료약도 없다. 노력한다고 바뀌지도 않고 자라온 환경 탓도 아니라고 한다.

동성애.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존재하는 오래된 역사. 그 진실성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도 하나님의 한 가족이건만 종교적인 이유로 죄인 취급하고, 퇴폐적이라고 내몰아서 벌레 취급을 하는 우리사회. 그럴수록 그들은 숨어 살 수밖에 없다. 연예인 외에도 예술 분야나 전문직 분야에 성적 소수자가 많다고 하는데 이제는 이들에게도 당당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들만이 음지에서 괴로워하며 죄책감에 떨고 있는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 정체성이 혼란한 사춘기나 적어도 20대 중반까지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확신을 갖기가 힘들다고 한다. 여학교나 군대 같은 곳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동성애자의 기질도 환경이 바뀌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단 의심이 간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탐색기를 가져야 될 것이다. 자신을 완전히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데에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단을 한 후에는 그들을 믿어주고 포용해 주자.

‘엄동설한 산속에 우리 애 발가벗겨 세워놓지 말자. 우리라도 옷을 든든히 입히고 바람막이가 되어주자’는 드라마 속 게이 엄마의 대사처럼 말이다.

마침 그들을 위한 책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드라마와 더불어 그 책이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죄인으로 내몰렸던 성 소수자들을 보듬어 줄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성애. 타고난 운명이라는 보수 쪽과 다양성의 한 선택이라는 진보 쪽의 두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는데. 유전 여부도 생물학적으로 밝혀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는 행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그들의 힘든 결단을 믿어주고 안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인생은 다 아름다워야 하기에 말이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