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반성하는 언론, 반성없는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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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처럼 언론인들의 처신이 어려운 때가 없다. 이른바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언론인들이 줄줄이 도마에 오르면서부터다. 해당 언론사에 몸 담고 있는 기자이건 그렇지 않은 기자이건 간에 왠지 몸이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어느날 신문을 펴든 아내로부터 당신은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느꼈던 씁쓸함을 잊을 수 없다.

*** '尹게이트'일그러진 자화상

그뿐만 아니다. 외부 손님들과의 식사 중에 화제가 윤태식 게이트 쪽으로 옮겨가다 어느덧 언론비리에 대한 분개로 발전한다. 좌중에 낀 눈치 빠른 인사가 말을 끊고 다른 화제로 바꾸려 할 때의 그 어색한 분위기가 날 바늘 방석 위에 앉히고 만다. 아내의 시선에는 걱정이 서려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는 차가움을 느낀다. 짐작컨대 기자들을 지켜보는 독자나 시청자들의 시선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언론인들의 비리는 과거에 아파트 특혜 분양을 포함한 부동산 투기와 주식 및 현금 거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진실을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기자의 직무와 윤리에 자주 경종이 울렸다. 어느 언론사라고 할 것 없이 시기를 달리하며 엄청난 내부 시련도 겪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하는 자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인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취재보도와 관련된 윤리강령 수준도 높아졌다. 그런데도 또 참으로 미묘한 문제들이 뒤를 이어 발생했다. 결국 시대상황은 바뀌었는데 변화하지 않는 건 우리들이었다-는 결론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

왜 우리들은 국민들에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그것이 요구하는 변화를 좇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해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침묵이 더 이상 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약 9년 전에 일어난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과거 법무부장관을 지낸 K씨가 속사포로 쏘아댄 이야기가 언론인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언론사 간부들에게 마구 돈을 뿌려라.

그러면 자신들이 기대하는 기사가 게재될 것이다-하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요즘에는 문제의 윤태식 게이트가 거의 비슷한 수법으로 언론에 침투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숨쉬고 있는 '부끄러운 언론문화'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언론 윤리라는 성벽이 간단없이 뚫린 것은 우리가 우리의 취재 방식을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해버리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정당성' 위에서 재물 욕심까지 채운 게 문제였다. 그들 주변에서는 회사 사업과 연결시키기 위해, 보도와 광고를 묶기 위해-등등의 변명이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사간 취재 경쟁이 가열될수록 보도가 요구하는 윤리성은 상대적으로 결여되기 쉽다. 경기 침체로 언론의 영업환경이 악화될수록 비정상적 취재관행에 비리가 싹트기 쉽다. 어느날 갑자기 부상한 기업이나 허장성세가 강한 인물, 출세욕이나 권력욕을 억누르지 못한 인물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의 그런 약점을 파고 든다.

우리들이 취재보도 활동에서 허용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하는 선이 너무 모호하지 않은가에 대한 자책이 앞선다.

*** 구체적 취재윤리 고민할 때

보도와 주식투자, 보도와 광고, 보도와 사업 등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하고 정보의 투명성 원칙에 대한 합의가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한국 언론을 미국.유럽 수준의 윤리강령으로 끌어올리기에는 우리들의 주변 환경이 너무나 연고주의적이고 정실사회에 묶여 있다. 그러한 인적관계를 끊고 맺기가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구체성이 없고 실현되지 않는 윤리강령은 한국 전체 언론의 존엄을 손상시키기 쉽다. 무엇보다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좀더 솔직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에 언론은 또 다른 유혹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윤리의 한계선상에서 고뇌하는 시기를 맞았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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