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하지 못한 '해야 할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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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인들의 연두 기자회견과 인터뷰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여야의 대선후보 경선, 지자체 선거,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들을 앞두고 있어서다.

지난 14일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7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21일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가 연두회견을 했다. 각 신문사와 방송사의 인터뷰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회견 내용과 인터뷰를 보는 국민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학자 김광동(金光東)나라정책원장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이 쏟아지지만 기자나 페널리스트들이 정말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金대통령과 李총재, 韓대표에게 질문했던 내용을 보면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金대통령에게 한 질문은 "개각을 하느냐" "당적이탈 용의는 없느냐"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대통령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데 견해는" 등이 주류다.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李총재에게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개선됐나"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와는 어떤가"라는 질문이었고, 韓대표에 대해서도 민주당 경선과 관련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金원장은 "정치지도자들의 연두회견에서 특검제 상설화 여부를 제외하고는 정말 이것이 국민의 일반적 관심인지, 기자들 중심의 관심인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03년부터 20조원 이상씩 상환해야 하는 공적자금 문제, 일본 엔화 하락과 수출대책,벤처와 주식시장 활성화 문제, 교육과 농업대책, WTO 가입 국가 중 우리만 없는 자유무역협정 등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며 "그런데도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권력 관계와 짝짓기에 가있더라"고 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金원장의 지적을 정말로 뼈아프게 받아들인다.

언론은 그동안 "왜 정책을 내놓지 않느냐"고 정치권을 공격했다. 하지만 정작 회견을 할 때면 기자들은 거의 대부분 권력의 뒷거래와 갈등에만 관심을 뒀다는 점을 반성한다.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의원의 "도대체 언론이 정책에 관심을 둬야지 정치인들도 공부를 할 게 아니냐"는 하소연도 아픈 질책이다.

정치의 계절에 기자들이 어떤 질문으로 미래 한국의 비전을 이끌어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다짐해본다.

김종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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