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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탈레반포로 인권 무시하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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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11 테러에 대해 미국은 '미국적 가치를 부정하는 테러 공격'으로 규정했다. 미국적 가치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으로부터 미국적 가치를 지키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무시당하는 상황은 수긍하기 어렵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선 테러수사를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침해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포로들에 대한 처우 문제도 그 중 하나다.

미국은 아프간전쟁에서 붙잡은 포로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취급해 전쟁포로에게 허용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선 포로들을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수용하지 않고 1만3천㎞나 떨어진 카리브해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로 호송한 것이 그렇다.

호송 과정에서도 다리에 족쇄를 채워 군용기 좌석에 결박했으며,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눈을 가렸다. 또 이슬람 남성의 상징인 수염을 강제로 깎았을 뿐 아니라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진정제를 투여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할을 통치한 정부였고, 알 카에다는 그 동맹세력이다. 그들은 미군과 미군의 지원을 받은 반(反)탈레반 세력과 전투를 벌였다.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전투 중 붙잡힌 전투원은 정규군.의용군.민병대를 불문하고 전쟁포로로 대우하도록 돼 있다.

포로를 붙잡은 측은 포로의 인간적 존엄성을 손상해선 안되며, 음식과 구호품을 제공해야 하고,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압박을 가해선 안된다. 또 포로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전쟁이 끝난 뒤 곧 귀환시키고, 범죄자일 경우라도 특별군사재판 아닌 일반군사재판에 회부되며 3심(審)제도가 적용된다.

미국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 병사들이 범죄집단의 구성원이므로 제네바협약이 규정한 전쟁포로의 지위를 누릴 수 없다면서 범죄자로서 재판을 받게 할 방침이다.

관타나모에 수용한 것도 이 지역이 1903년 이후 미국이 쿠바로부터 장기 임차(賃借)해 사용해온 외국 땅이므로 미국 헌법이 개인에게 보장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관타나모에 최대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방 시설을 마련 중이다. 지금까지 호송된 포로 숫자는 1백10명, 아프가니스탄에서 호송을 기다리는 포로들이 3백4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권 관련 국제기관과 민간단체들은 미국이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미국의 잘못으로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소중한 가치들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로빈슨 판무관은 포로들의 지위를 결정할 재판소 설치를 제안했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연맹은 미국이 전쟁포로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무한정의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정의의 패러디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제네바협약을 주관하는 국제적십자(ICRC)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병사들의 전쟁포로 신분을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 조사 활동에 나섰다.

테러리즘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리즘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전쟁포로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할 때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리즘에 대해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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