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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61명인데 … 외국인용 공보물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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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6.2지방선거 “저도 오래는(올해는) 뚜표(투표)해요.”

1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안산시청 앞 벤치. 안산시장 선거 공보물을 손에 든 미카미 히로미(48·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사진)씨는 오랜만에 첫사랑을 만나는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제가 조히(저희) 아파트 반장이에요. 그래서 투표권은 없어도 선거 때마다 공보무를(공보물을) 정리하는데 이번엔 제 것도 있더라고요. 노무(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니까요.”

미카미씨는 일본 홋카이도 출신이다. 간호사로 근무하던 1992년 교회에서 주변 사람의 소개로 무뚝뚝한 한국 남자 김구식(50)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남편 직장이 있는 경기도 안산시로 이주한 뒤 세 아이를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7년째. 이제는 한국어가 유창한 ‘한국 아줌마’지만 선거는 처음이다. 소득 수준 등을 따지는 까다로운 조건과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영주권 취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2007년 2월 ‘외국인 등록증’이라고 적힌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투표권이 나왔다.

미카미씨는 ‘진짜 한국인이 됐다’는 생각에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신주단지 모시듯 책상에 고이 올려놓았다. 유권자가 되니 후보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신문에 나온 선거기사를 꼭 챙겨보고 남편, 아이들과 ‘어떤 후보를 뽑을지’를 놓고 토론도 벌였다.

그녀가 본 한국과 일본의 정치는 닮았다. 다당제로 운영되고 주요 2, 3개 정당이 정책을 이끌어 가는 점도 비슷하다. 선거 때나 TV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거리 유세로 시끄러운 점도 똑같다. 하지만 한번에 지사, 시장, 교육감, 교육의원 등 8명을 뽑아야 하는 복잡한 투표방식은 생소하기만 하다. 더욱이 출마한 후보만 61명에 이르는데 중간에 사퇴한 후보도 많아 누구를 뽑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뽑으니까 더 신경이 쓰여요. 아직 후보들도 다 모르는데…. 특히 시·도의원이나 교육의원 출마자는 전혀 모르겠어요. 외국인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다른 언어로 된 공보물이나 모의투표 교육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쉬워요.”

그녀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후보군은 교육감 선거다. 고1, 중3, 초등학교 6학년 아들딸을 뒀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부터 공교육 활성화 방안까지 어떤 공약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일본에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 말만 듣고 투표했어요. 그런데 내가 살고, 내 아이들이 사는 나라를 위한 일꾼을 뽑는 거잖아요. 우리 아들은 ‘다문화 가정에 혜택을 많이 주는 후보를 뽑으라’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복지 정책을 많이 펼치는 후보에게 한 표를 주고 싶어요.”

투표권이 생긴 뒤 주변 에 ‘꼭 투표하라’고 당부한다는 그녀는 “오늘 저녁은 가족들과 선거 공보물을 보면서 어떤 후보를 뽑을지 고민해 봐야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안산=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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