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Plus] 가수 이정현이 이성강을 만났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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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꿈을 먹고 꿈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이 마주쳤다.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右) 감독과 지난해 말 3집 '매직 투 고 투 마이 스타'를 내고 '미쳐'에 이어 '반'으로 맹활약 중인 가수 이정현(左)이다.

'마리 이야기'는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서정적인 영상으로 국산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팬터지 애니메이션. 특히 뿌연 회색빛 도시를 갈매기 한 마리가 유영하는 첫 장면은 매니어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큼 인상적이다.

테크노 여전사, 이집트 여신부터 마법사에 이르기까지 평소 자신의 앨범 컨셉트의 기획을 손수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끼 덩어리' 이정현.

그녀가 보여주는 깜찍한 상상력의 자양분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까지 무궁무진하다. 매일 오전 2시나 돼야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 속에서도 이정현이 이감독과의 만남에 흔쾌히 응한 것도 어쩌면 또다른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 목욕탕 등 일상담기 애써

"어머, 감독님 꼭 '마리 이야기'처럼 생겼어요!"

17일 오후 사진 촬영을 위해 만난 서울 도산공원. 이정현은 이성강 감독을 소개받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씩 웃는 이감독. 모르긴 해도 '마리 이야기'가 열두살 소년이 환상 속에서 만났던 소녀 마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선량한'내용이니 이는 분명 칭찬일테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거의 스무살. 하지만 스스럼없이 웃고 얘기하는 이정현 덕분에 금세 친해졌다. 이감독은 이정현의 '꽃잎'때부터 "밝고 어두운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썩 괜찮은 배우"라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현="'마리 이야기'참 잘 봤습니다. 애니메이션 하면 관객 연령층이 낮다고들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굉장히 어른스럽네요. 음…전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는데 '이웃집 토토로'생각도 나던걸요."

이성강="잘 봐줬다니 고마워요.DVD 나오면 선물할 게요(웃음). '토토로'와 비슷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마 마리와 같이 나오는 커다란 개 때문인 것 같아요. 두 작품 모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감성의 팬터지니까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죠."

이정현="평범한 일상인데 예사롭지 않게 잡아내신 것 같아요. 요약하면 성숙함과 완성도!(일동 웃음)"

이성강="그런 반응이 제일 반가워요.'사건'이 되기엔 뭣하지만 평범한 삶 속의 순정을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작품 속 목욕탕이나 버스 안 풍경이 그런 거죠. 줄거리나 캐릭터보다는 감정의 선을 따라가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정현씨는 어떤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이정현="주인공 남우가 달빛이 스며드는 방에 누워 잠이 안와 뒤척이면서 손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장면이요. '와, 딱 나네!'그랬어요. 그거, 외로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이정현이 단골로 가는 스시 바 '13디그리'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도산공원을 나오는데 입구 한쪽에서 CF 촬영 중이던 안성기씨와 맞닥뜨렸다. 그는 '마리 이야기'에서 남우 엄마(목소리 연기 배종옥)에게 연정을 품는 어부 아저씨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정현은 그가 단박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아저씨, 저 정현이에요 정현이!"하고 큰 소리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 목소리 연기 해보고파

이정현="다른 분들한테 죄송하지만 영화에서 안성기씨 목소리가 제일 배역과 잘 어울렸어요. 입은 다물고 있지만 여기(볼을 가리키며)이렇게 주름이 파이는 미소가 똑같았어요."

이성강="안성기씨가 개봉날 무대 인사를 하러 왔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어부 아저씨가 나오니까 객석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나오면서 '안성기다, 안성기야'수군대는 거 있죠.(웃음)"

이정현="기회가 되면 목소리 연기도 하고 싶어요. 라디오 출연을 해보니까 훨씬 집중력이 있더라고요. '슈렉'의 에디 머피나 카메론 디아즈처럼 말이죠."

이성강="연기도 연기지만 정현씨는 감독 지망생(중앙대 영화과)이라면서요."

이정현="지금 학교를 다니면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다른 많은 걸 놓칠까봐 쉬고 있어요. 남우가 마리를 만나 외로움을 달래고 꿈을 꾸듯이 전 노래 부르고 앨범을 기획하는 걸로 꿈을 꾸니까 당분간은 캠퍼스 생활은 못할 것 같네요."

이 감독은 나무 위에 올라가 저 먼 바다로 눈길을 던졌고 이정현은 그 눈길을 가슴에 담았다.

글=기선민.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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