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일대는 '길거리 건축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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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천에는 개항 1백년 역사와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국내 최대의 고딕과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현존하고 있는 인천시 중구 신포 ·신흥 ·답동 일대에는 제물포항 개항 시기인 1883∼1920년 건축된 건물 50여채가 지난 한 세기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교차해 ‘길거리 건축박물관’으로 불리우는 이곳의 시간여행은 인천에서만 느낄수 있는 색다른 기행이다.

#신흥동 곡물창고

기행의 첫 걸음은 신흥동 창고거리부터 시작된다. 고전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1930년대 창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제가 쌀을 반출하기 위해 지은 곡물창고 거리는 지금도 '수인역(水仁驛)'이라고 불린다. 경기도 여주.이천 등 곡창지대 쌀을 이곳까지 운반하기 위해 일제가 깔아놓은 수인선(수원역~남인천역) 협궤열차 철로가 창고 안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정미소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와 발동기 소리로 번잡했던 창고거리는 최근 인근에 아파트와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귀퉁이만 겨우 남겨진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일본풍 주택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인들이 '문화주택'이라고 부르며 남향으로 넓게 창을 낸 작고 아담한 2층집이다.

#인천 근대건축물 '트로이카'

1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축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답동성당과 일본58은행 인천지점(현 중구요식업조합), 구(舊)제물포구락부(현 인천문화원) 건물이다.

답동성당(사적287호)은 1897년 고딕양식의 단층벽돌 구조로 건축됐으나 다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돼 현재 인천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58은행 인천지점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1892~94년 사이 일본인이 직접 본국에서 벽돌을 운반해 지었다. 프렌치 르네상스양식의 2층 건물로 외부에는 목조 발코니, 지붕에는 비늘 모양의 동판을 올린 것이 특징이다.

구 제물포구락부 건물은 격동기인 1901년 인천에 거주하던 미국.독일.일본.러시아인들의 사교장으로 지어져 건물 안에는 당구장.도서실.사교장, 외부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다.

벽돌 2층건물로 외부형태는 단순하지만 지붕은 상당히 복잡한 양식으로 건립돼 아래층(32평)이 2층(85평)보다 좁아 건물 옆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이색적인 구조다.

#자유공원의 홍예문(虹霓門)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어 홍예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앙동.관동 등에 머물던 일본인이 급격히 늘어나자 만석동 방면으로 거주지를 넓히기 위해 뚫은 문이다.

1905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거대한 암석들이 앞을 가로막아 3년여에 걸쳐 완성됐으며 반석 위에 세워진 돌문답게 지금까지 끄덕 없다.

또 하나의 이국풍 건물은 옛 중앙청과 흡사한 구 인천 일본제일은행지점(시 유형문화재 제7호)건물. 중앙에 돔을 설치한 석조 단층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처음에는 목조건물이었으나 1899년 벽돌.석재.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전량 일본에서 들여와 다시 지었다.

#제2전성기 맞는 인천 차이나타운

경인전철 인천역에 내려 길을 건너면 기둥 네개와 복층 지붕구조를 갖춘 전형적인 중국 건축물로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힌 패루(牌樓.길이 17.3m, 높이11m)가 우뚝 서 있다. 바로 우리나라 자장면의 원조인 인천 차이나타운의 관문이다.

패루를 지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3백m 구간 양쪽으로 중국식 전통주택과 중국 토산품.전통의상 등을 판매하는 화상(華商)이 자리잡고 있다. 이 언덕길은 자장면을 주제로 한 영화 '북경반점'의 촬영지였다.

이곳에는 4대째 전통을 자랑하는 '풍미', 물만두로 유명한 '상원', 중국 추석명절용 과자인 월병(月餠)전문점인 '복래춘', 두부로 고기요리를 대신해 유명한 '태화원' 등 중국풍의 붉은 대문과 금빛 간판을 내건 중국집이 즐비해 주말이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개항 이후 한 때 화교가 1만여명이 넘었으나 현재 5백여명이 남아 쿵후도장, 화교학교, 중국한의원, 중국문화사 등을 운영하며 '한국 속의 중국'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韓流)열풍과 월드컵 특수 등으로 인천을 찾는 중국인과 중국인 동포가 급증, 차이나타운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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