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벤처 1호 'SNU프리시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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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서울대 박희재 교수가 초정밀 측정장비의 핵심 부품인 나노미터이송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임현동 기자

서울대 실험실 창업벤처 1호 업체가 대박을 터뜨렸다. 1998년 서울대 공대 실험실에서 출발한 'SNU프리시젼'은 세계 초정밀 측정장비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코스닥 등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말 코스닥 예비등록 심사를 통과했다. 예상가는 액면가의 50배인 2만5000원으로 잡고 있다.

벌써부터 이 주식은 코스닥 시장의 새 황금주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회사의 올 매출액은 4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매출(78억5800만원)의 5배를 웃돈다. 특히 이 회사의 매출 대비 수익률은 40%에 가깝다.

올 상반기에만 194억원의 매출에 72억원의 순익을 냈다. 세계 초정밀 측정장비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결과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나노(10억m분의 1) 단위까지 측정하는 장비다. 주로 노트북 컴퓨터나 LCD-TV의 액정패널 제조과정에 쓰인다. LCD패널을 생산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중국.일본 등 4개국. 특히 AUO 등 대만의 패널업체 90% 이상이 이 제품을 갖고 있다. 중국 업체도 비슷하다.

NEC.DNP 등 일본 업체의 절반이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LG필립스가 쓰고 있고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부서에 이 측정장비가 놓여 있다.

창업 당시 이 회사 직원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박희재(43)교수가 이끄는 실험실 연구원 5명이 전부였다. 자본금 5000만원도 동문과 연구원들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연구는 학교 실험실에서 했다. 1999년 스웨덴 볼보의 협력업체인 샤머텍에 1만달러어치의 정밀도 계측장비를 처음으로 팔았다.

당시 박 교수는 그중 1달러 지폐를 빼서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었다. 그는 "지금도 그 1달러 지폐를 보면서 작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기술 하나만 믿고 창업에 나섰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10여년간 산학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광학기기 제조업체 '한라옵티칼엔지니어링'을 2000년에 사들여 생산설비까지 갖췄지만 세계 정보기술(IT)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판로가 막혔다. 박 교수는 "당시 하도 돈이 쪼들려 사업을 정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중순 LG필립스가 이 회사의 기술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다.

LCD패널을 생산하는 LG필립스로서는 이 회사의 초정밀 측정기술이 필요했다.

KTB.산은캐피탈 등 기관투자가들이 이 회사에 2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자금 사정이 그때부터 나아졌고 2002년 말 TFT-LCD 패널 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 측정장비를 개발했다.

세계 각국의 주문이 쇄도했다. 지난해 초 대만과 중국.일본에서 유수의 LCD패널 생산업체들이 차세대 TFT-LCD생산을 위해 이 회사의 제품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최대 경쟁업체인 일본 다카노사는 SNU프리시젼에 밀려 세계 측정장비 시장점유율이 10%선에 머물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업을 꾸려나가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대학의 연구력은 기술벤처가 자랄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며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창업 벤처의 맏형으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자금 지원은 물론 사업 노하우 등을 적극적으로 전수할 생각이다.

박혜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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