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검찰총장 사임 반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청와대는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의 거취 문제가 해결되자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틀 동안 청와대의 사퇴요구에 '2년 임기' 조항을 들어 완강하게 거부하던 愼총장은 13일 밤 김학재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12일 낮부터 13일 밤까지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당초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愼총장이 마음을 바꾼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청와대의 사퇴 요구가 김대중 대통령의 뜻과 무관치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청와대는 14일 金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전에 상황을 마무리해야 하는 다급한 입장이었다.

자칫 金대통령 회견에서 愼총장의 거취 문제에 관한 질문이 집중될 경우 '탈(脫)정치, 경제 전념'이란 金대통령의 신년 다짐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하루 전인 지난 12일 愼총장에게 처음으로 사퇴를 요구했을 때도 '愼총장이 결단을 내려야 金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의 민심관리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여권으로선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愼총장 거취 문제가 옷로비 파동 때처럼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愼총장으로선 또 자신의 동생 승환씨가 차정일 특검팀에 의해 이날 오후 구속되면서 검찰총장의 신분으로 특검팀에 소환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검찰 주변에선 신승환씨가 구속되면 愼총장이 도의적 책임과 함께 수사지휘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질책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愼총장 동생에 대한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 결과 구속 결정이 난 만큼 공정한 수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愼총장의 사퇴는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기류도 愼총장으로선 절망적 상황으로 흘렀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지난해 12월 국회 검찰총장 탄핵안 폐기 파동 때 愼총장을 지원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가 이번엔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愼총장은 더 이상 검찰을 지휘할 처지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金총재는 일본 방문 도중 정진석 대변인에게 "특검의 조치는 민성(民聲)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검찰은 특검조사 결과를 겸허히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민주당의 한광옥 대표와 대권 예비주자들이 일제히 '사퇴 불가피'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나서 愼총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 韓대표는 기자들에게 "대단히 고민 중인 사항"이라고 말해 '愼총장 사퇴 불가' 입장을 거둬들였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인제 고문은 "동생이 로비 혐의로 구속되면 총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중권 고문은 "가족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고 했다. 김근태 고문도 "愼총장은 동생의 수사를 원활하게 돕는다는 차원에서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영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